경기도 출신. 이명은 복경순(僕敬淳).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의 참사(參事)로 활동하다가 1926년 12월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32년 임시정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긴 뒤에도 임시 의정원의 의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임시정부의 기록물을 항저우로 운반하고 난징[南京]으로부터 온 이세창(李世昌)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또 중국 측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진광사(震光社)를 설립하여 기관지인 『진광(震光)』을 한글판(500부)과 한문판(1,000부)으로 발행하여 독립운동의 상황을 선전하였다.
1935년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을 중심으로 대동단결을 위한 단일당(單一黨) 조직 문제가 거론되자 한국독립당 내에서는 찬반 양론이 격화되었고 신당 참가 찬성파가 승리하게 됨에 따라 조선민족혁명당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38년 9월 상해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