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부터 선조 때 사이에 활동하였다. 호는 시은(市隱).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의하면 원래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40대까지 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천한 노비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자, 즉시 발분하여 학업에 열중한 나머지 수년 만에 문명(文名)을 드날리게 되었으므로 사십문장(四十文章)이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특히,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던 김정(金淨)과 가까이 지내며 시문(詩文)을 창수(唱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여항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유희경(劉希慶)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던 풍월향도(風月香徒) 시단의 한 사람이었다. 작품으로는 「증인(贈人)」 등 3수의 시가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