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극(爾極), 호는 만취정(晩翠亭). 서울 순화방(順化坊) 누각동(樓閣洞 : 지금의 종로구 누상동·누하동 부근)에 살면서 학동들을 가르치고, 저보(邸報)를 필사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고 한다.
가난에 개의하지 않고 단정한 풍모를 잃지 않아서 군자라 불리었다. 여항시인들의 시사(詩社)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구성원이었으며, 장우벽(張友璧)·엄계흥(嚴啓興)·유세정(庾世貞)·김낙서(金洛瑞)·천수경(千壽慶)·장혼(張混) 등 여항문인들과 사귀었다.
그의 손자 박응모(朴應模)도 시재(詩才)가 있어 뒤에 직하사(稷下社)를 결성하여 시작에 탐닉하였다. 저서로 『만취정유고』 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