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창성 출신. 만주로 건너가 27결사대에 가입하였다. 27결사대는 국적 암살을 목적으로 이탁(李鐸) 이하 27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1919년 고종의 인산(因山)을 계기로 이탁(李鐸)·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안경식(安景植)·박진태(朴鎭台) 등과 세칭 5적(五賊)·7적(七賊)을 암살할 것을 결의하였다.
결사대의 일원으로 동지들과 서울에 잠입하여 권총과 탄환을 준비하고,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효자동의 김수환(金垂煥) 집에 가서 500원을 받기로 하고, 인사동 한봉취(韓鳳翠) 집에 가서는 120원을 모금하였으며, 돈의동 김종근(金宗根) 집에 가서는 3,000원을 조달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미리 탐지한 일본경찰에 의하여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