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중온(仲溫), 호는 남촌(南村). 아버지는 현령 박인호(朴仁豪)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군수 홍윤현(洪胤玄)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로 익위(翊衛)가 되었다. 1576년(선조 9) 사직서참봉이되고, 1582년 사재감참봉·돈령부직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585년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을 거쳐, 이듬해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냈다. 이어 1589년에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이천현감(伊川縣監)으로 나아갔다. 1592년(선조 25) 익위사익위가 되고, 이해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평양까지 갔다가 검찰종사관(檢察從事官)이 되어 지방을 순찰하던 중 평양이 함락되고 선조가 의주로 피란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주 행재소(行在所)로 달려가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환도하는 군사를 따라서 개성에 와서 개성부도사(開城府都事)가 되었다. 재임시 격무로 우사(寓舍)에서 49세로 죽었다. 서예에 능하였고, 산수·궁마(弓馬)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