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강우의병장으로 추대된 학자·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또한,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스승인 정구에게 정인홍을 멀리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박민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못 마땅히 여기게 되었다. 인조반정 후 진사가 되었다.
이원익(李元翼)이 천거하였으나 등용되지 못하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군(州郡)이 창의(倡義)하여 강우의병장(江右義兵將)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의병을 거느리고 상주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갔다.
기자헌(奇自獻)이 박민을 찾아가 강상(江上)에서 낚시질하다가 시 한수를 지어주었는데, “천지에 눈보라치니 모든 풀은 시들었는데, 그대의 마음은 대나무같이 푸르도다.”라고 하여 박민의 철석같은 절의를 나타내었다.
장현광·김우옹(金宇顒)·허목(許穆)·정온(鄭蘊)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죽은 뒤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진주의 정강서원(鼎岡書院)과 정산(鼎山)의 향현사(鄕賢祀)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입재집(立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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