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는 백하(白河). 경기도 고양 출신. 1920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3학년에 편입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송영(宋影)과 만나 회람지 『새누리』를 내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22년 3월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바로 중퇴하고 중국으로 가서 상해(上海)에 있는 혜령영문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하기도 하였다.
그가 상해·남경·북경·천진·만주 등지를 전전하던 중 국내에서 송영(宋影)·이호(李浩)·이적효(李赤曉) 등이 주동이 되어 ‘무산계급 해방문화의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문화단체인 염군사(焰群社)의 중국 특파원 역할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4년 가을 중국으로부터 돌아와 염군사 동인들과 교유하면서 사회주의 문학관을 다져갔다. 1925년 연희전문학교에 편입함과 동시에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맹원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소년잡지 『별나라』를 송영·임화(林和) 등과 함께 편집하고 아동문학과 평론 등을 발표하면서 소년문학운동을 펼쳤다. 그 뒤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8년 5월 첫 시집 『산제비』를 중앙인서관에서 출간하였다.
1945년 서울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일제 말기 중단되었던 문단 활동을 재개하게 되는데, 더욱더 첨예한 현실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문학적 경향을 바탕으로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시분과위원·아동분과위원 등을 지내다가 1946년 6월에 월북하게 된다.
월북 후 그는 북조선문학예술동맹 출판부장과 중앙상임위원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국가상임위원·조국평화통일 상임위원·작가동맹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북에서 출간한 시집으로는 『진리』(1946)·『승리의 나팔』(1953)·『박세영시선집』(1956) 등이 있다. 이외에도 『밀림의 역사』 등을 창작하여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았고,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하기도 하였다.
박세영의 시세계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단계는 일제강점기의 이농하는 유이민(流移民)의 실상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 해당된다. 2단계는 노동 현장에서의 혁명적인 노동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오면 가중되는 일제의 탄압으로 직접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피하여 상징적인 기법으로 표현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산제비』에 실린 일군의 작품이다. 3단계는 8·15 이후의 시세계로 새로 펼쳐질 밝은 새날과 젊음의 열망뿐만 아니라, 현실 변혁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