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박영충(朴永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고(朴翺)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승원(禹承援)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식년 문과에 정과로 합격한 뒤 1473년(성종 4)에는 부정(副正)이 되었고, 1474년에는 경차관(敬差官)으로 충청우도와 전라도에 내려가 구휼(救恤: 빈민이나 이재민을 도와 구제함)을 하였다.
1475년에는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선무사(宣撫使)가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고, 1479년에는 대사간을 거쳐 충청도관찰사·형조참의·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호조판서·전라도관찰사·한성부좌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496년(연산군 2)에 예조판서 이후 평안도관찰사·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장형(杖刑)을 받고 진잠(鎭岑)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폐위로 방면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좌찬성이 되었고, 그 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정안(靖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