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충청도관찰사, 형조참의,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1434(세종 16) ~1 512년(중종 7). 본관은 죽산(竹山). 박영충(朴永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고(朴翺)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승원(禹承援)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5년에는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선무사(宣撫使)가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고, 1479년에는 대사간을 거쳐 충청도관찰사 · 형조참의 · 이조참의 · 황해도관찰사 · 호조판서 · 전라도관찰사 · 한성부좌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496년(연산군 2)에 예조판서 이후 평안도관찰사 ·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장형(杖刑)을 받고 진잠(鎭岑)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폐위로 방면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좌찬성이 되었고, 그 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정안(靖安)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삼탄집(三灘集)』
- 『국조인물고』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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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년 : 『국조인물고』 권1의 "박원형의 행장(行狀)"에 의하면 아버지 박원형이 1469년에 죽을 당시 박안성의 나이가 36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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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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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중종실록』 16권, 1512년(중종 7) 8월 6일. "영중추부사 박안성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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