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기옹(耆翁). 박채(朴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병문(朴秉文)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박임종(朴林宗)이며, 어머니는 증영의정 허손(許蓀)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9년 동생 박조년(朴兆年)과 함께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이어 예조좌랑·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는데, 이때 소릉(昭陵)의 부묘(祔廟)에 대한 이론(異論)이 일어나 의견이 구구할 때 홀로 부사(祔祀: 신위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냄)가 합당함을 역설하였다.
성격은 기국이 넓어 모가 나지 않았으며, 일에 임하여서는 매우 강직하여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