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대동강소견」·「신개지」·「풍경」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43년 '성전(聖戰) 하에서 미술보국(美術報國)에 매진'의 취지로 설립된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했고, 그 해 6월 단광회 회원들과 함께 조선인 징병제 실시를 찬양 · 홍보할 목적으로 4개월에 걸쳐 100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실시기념」을 공동 제작했다. 이 그림은 경성과 평양의 순회전을 거쳐 1944년 6월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기증되었다. 같은해 3월 호전적인 관제(官製) 전시회인 '결전미술전'에 「추격(追擊)」을 출품했고, 제23회 선전에서 「모자한일(母子閑日)」로 특선했다.
해방 이후 1946년 조선미술가동맹에 중앙집행위원으로 참여, 회화부 위원장을 맡았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의 추천 ·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1949년 대한문인협회의 준비위원을 맡았다. 1953년부터 3년간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5년부터 1958년까지 프랑스의 아카데미 그랑드쇼미에르에서 공부했으며, 1956년 파리국제미술전에 초대받아 출품했다. 1960년부터 서라벌예술대학 ·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6년 정년퇴임했다. 1960년 대한미술협회 부이사장, 197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197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94년 6월 15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 『동아일보(東亞日報)』
- 『매일신보(每日新報)』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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