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차비역관,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서(景瑞)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음죽(陰竹: 지금의 경기도 이천)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차비역관|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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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차비역관,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음죽(陰竹). 자는 경서(景瑞).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차비역관(差備譯官)으로 조선과 명나라, 명나라와 일본의 외교담판에 많은 활약을 하였고, 1604년(선조 37) 요동(遼東)의 주민인 손득춘(孫得春) 등이 의주의 난자도(蘭子島)·체자도(替子島)를 무단으로 경작하자 3차에 걸쳐 명나라를 내왕하면서 사건의 마무리를 지었다.

1609년(광해군 1) 도제조(都提調) 이덕형(李德馨)에 의하여 사역원 담당역관인 훈상(訓上)으로 임용되어 당상관이 되자, 사간원에서는 박인상이 교회(敎誨: 잘 가르쳐 잘못을 뉘우치게 함)를 거치지 않았다 하여 쟁론하였다.

이때 이덕형은 이 사람의 재주는 화실(華實: 형식과 실질을 갖춤)하여 그 직책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만약 앞으로 이 사람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이번 일을 예로 하여 역시 등용하여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1617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통문관지(通文館志)』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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