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박천 출신. 1920년 만주 관전현(寬甸縣)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에서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밀정 등의 암살을 위해 국내로 파견된 민양기(閔良基)의 권유로 1920년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다. 그 뒤 다른 단원들과 함께 진남포로 향하던 중,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불심검문하는 일본 경찰을 살해하였다.
이어 황해도 은율군에 사는 동지 황윤상(黃潤相)의 집에 도착하여 일행과 회합하고, 친일파로 독립 운동을 방해하던 은율 군수 최병혁(崔炳赫), 군참사(郡參事) 고학륜(高學倫), 일본 경찰을 응징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민양기는 주재소로, 이지표(李芝杓)는 최병혁의 집으로, 고두환(高斗煥)은 고학륜의 집으로 각각 출발하고, 자신은 변춘식(邊春植)과 함께 은율읍 동쪽 조밭 속에서 파수를 보았다.
이지표는 군수 최병혁을 사살하였지만, 고두환은 고학륜을 현관까지 유인하였으나 곧 의심을 품고 달아나 권총을 쏘았으나 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민양기는 주재소 후문으로 나오는 일본 순사를 사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0년 신천군 초리면에 사는 동지 노성우(盧聖祐) 집에 머물던 중, 황해도 경찰부 경찰대의 포위 공격을 받고 교전하여 일본 순사 1명을 중상시켰다. 그러나 이명서(李明瑞)·박기수(朴基洙)·주의환(朱義煥)·원사현(元士賢)·이지표·이근영(李根英) 등은 전사하였고, 민중서는 총상을 입고 민양기·고두환·변춘식·김정욱(金貞郁) 등과 함께 잡히고 알았다.
1921년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한편, 민양기는 사형, 고두환은 무기징역, 변춘식은 13년, 김정욱은 10년을 언도받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