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창배(昌培)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배웠으나 자라면서 소리를 좋아하여 처음 홍필원(洪弼元)·홍필광(洪弼光) 형제를 사사(師事)하여 잡가와 선소리를 배웠다.
뒤에 박춘경(朴春景)으로부터 시조와 잡가를, 조기준(曺基俊)으로부터 가사(歌詞) 등을 배워 시조와 잡가 및 선소리로써 대성하였고, 재담의 제1인자이었다. 1900년 궁내부가무별감에 임명되어 어전연주의 특전을 얻었다.
화려하던 광무대(光武臺) 시절에는 특유의 재담과 가무, 탈놀이의 하나인 발탈(足假面) 기예로 명성을 높였다. 그의 소리는 박천복(朴天福)·오영근(吳英根)·김경호(金慶浩)로 이어졌는데, 특히 박천복에 의하여 8·15 광복 후 그의 소리가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