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신의 주(酒)」·「황해의 노래」·「여수시초」 등을 저술한 시인. 평론가·신문기자.
활동사항
194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조선문학가동맹에도 가입했다. 그리고 평안북도 당위원회 기관지 「바른말」 신문사 편집국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46~49년 당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정로』의 편집국장 및 그 후신인 『노동신문』의 편집국장과 부주필 등을 지냈다.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신문학과 강좌장이 되었으며, 1950년 6·25전쟁 초 종군작가로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국기훈장 3급을 받았으며, 1951년 김일성종합대학에 복직했다. 1956년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8년 조소친선협회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66년 반당종파분자로 숙청되어,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휴머니즘의 역사적 전개』(이청원, 문학사상사, 1988.8.)
- 「박팔양 도회적 병리와 자연과의 거리」(홍신선, 『현대문학』, 1990.2)
- 「여수 박팔양 시연구」(유성호, 연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9)
- 「여수 박팔양선생께 드림」(민병균,『신인문학』, 1935.11)
- 「문인인상기-캐나리아의 애인 여수 박팔양씨」(안석주,『조선일보』, 1933.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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