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대한여학사협회회장, 이화학당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무렵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다. 1936년 12월 사회교화진흥간담회에 참석했고, 1937년 1월 방송교화선전협의회 강사와 조선부인연구회 간담회에 참석했다. 1937년 7월에는 애국금차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38년 10월에는 비상시국민생활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8년 11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주최한 순회강연반 연사로 장덕수와 함께 평안남도지역을 담당했다. 이후 일제의 관변단체가 주최하는 각종 강연회의 연사와 『매일신보』 등에 침략전쟁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1939년에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 문리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1940년 귀국 후, 1942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이 되었고, 5월에는 동 단체 주최의 군국의 어머니 좌담회에 참석해 징병제 실시에 대한 홍보대책을 협의했다. 그리고 김활란의 권유로 이화여자전문학교의 회계과장직을 맡아 이화의 재정을 꾸려나가기도 했으며, 1943년 8월 재단법인 이화학당이 설립되자 이사가 되었다.
해방 후인 1948년 YWCA연합회 이사, 1948∼1962년까지 YWCA 연합회 감사를 역임했고, 1951∼1954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사무국장, 1954∼1961년까지 학생처장을 역임했다. 1965년 3월부터 8월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서리를 지냈으며, 1966년 대한여학사협회회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지내고, 1970년 김활란이 사망하자, 후임으로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장직을 맡았다. 1977년 7월 2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 『이화100년사』(이화100년사편찬위원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4)
- 『경성일보』
- 『동광』
- 『동아일보』
- 『민주신보』
- 『조선중앙일보』
- 『현대한국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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