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로회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사람이다. 황해도 신천 출생.
1879년(고종 16) 어로면 유사가 되었으며, 1883년에는 천도교 황해도 접주 및 오읍 도령장이 되었다. 그뒤 동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개종하여 1893년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인이 된 뒤 마포삼열(馬布三悅, S,A.Moffett.)의 평양 널다리골[章臺峴]교회에 출석하여 숭인학교(崇仁學校) 교사로 활동하였다. 1895년경에는 황해도·평안남도 일대의 성경보급과 전도에 힘썼다. 1898년 널다리골교회의 제1대 장로로 선임되었다가 1901년 평양공의회에서 한국인에게 신학교육을 실시하게 되자 신학생이 되었다.
1907년 제1회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에서 7명의 졸업생 중 1인으로 목사안수를 받고 평안도 용강·제재·주달·고봉동·설월 등지의 교회를 관할하였다. 1908년 독로회 전도위원이 되어 황주·봉산·안악·남항·상원·성천 등 황해도지방의 전도할동에 종사하였다.
방기창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로는 강서의 반석·고창·송호교회, 진남포의 노정·예명교회, 용강읍교회 등이 있다. 1911년 9월 신병으로 전도목사직을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