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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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官員)의 정복(正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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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官員)의 정복(正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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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은 의례의 성격에 따라, 나라의 대사(大祀)·경축일·원단·동지·조칙을 반포할 때나 진표할 때에 착용하는 조복(朝服), 왕이 종묘·사직에 제사할 때 착용하는 제복(祭服), 공사(公事)와 사은(謝恩)의 관계로 왕을 배알할 때 착용하는 공복(公服), 평상 집무시에 착용하는 상복(常服)으로 구분된다.

이 밖에 정복은 아니나, 항시 공무를 볼 때에 착용하는 시복(時服),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될 때, 또는 국난을 당했을 때에 착용하는 융복(戎服) 또는 구군복(具軍服)이 있었다. 이들 제복에는 상하의 위계질서를 나타내기 위해 포의 색이나 부속품 등에 차이를 두었다. 관원들이 퇴청할 때 입는 일상복으로는 설복(褻服)·편복(便服)이 있는데, 이는 일반 백성과 같았다.

이러한 백관복의 제정은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다. ≪신당서 新唐書≫에는 고구려에서 왕은 백라(白羅)로 관을 만들어 쓰고, 대신들은 청라관(靑羅冠)을 쓰고, 그 다음은 강라관(絳羅冠)을 쓴다는 기록이 있다. 비록 직제를 들어 구분해놓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관복도 제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는 제7대 고이왕 27년(206)에 관식(冠飾)과 의색(衣色)·대색(帶色)으로 상하의 등위를 구별해놓았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공복에 속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제23대 법흥왕 7년(520)에 신라 육부 관원들의 복색과 상하·존비를 가려 의복제도를 정했다고 하지만 전해오는 것이 없다.

다만 ≪삼국사기≫ 색복조에 흥덕왕 10년에 경정한 백관의 관복제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신라의 관복제도는 사색공복제도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진덕여왕 2년(648)에는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에 청병하러 가서 당태종에게 장복(章服)의 개혁을 청하고 그들의 관복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듬 해 정월부터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당나라의 사색공복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려의 백관복제도는 ≪고려사≫ 여복지에 잘 나타나 있으며, 조복·제복·공복의 구별도 이 때부터 비로소 나타난다. 제복은 제17대 인종 18년(1140)의 ≪조정체례복장 詔定禘禮服章≫과 의종 때의 ≪상정고금례 詳定古今禮≫에 의하면 면복(冕服)이었다. 조복은 의종 때 상정했다고만 되어 있고 그 자세함은 밝혀져 있지 않다.

공복은 제4대 광종 11년(960)에 사색공복제도를 정하고, 의종 때에 이르러 구체화되었다. ≪상정고금례≫에 의하면 복두(幞頭)·복(服)·대(帶)·어대(魚袋)·홀(笏)로 구성되어 있었다. 등위는 사색에 의한 복색과 대의 장식 및 어대와 홀의 재료로써 구분하였다.

공민왕 6년(1357)에는 복색을 오행(五行)에 맞추어 흑의·청립(靑笠)으로 착용하도록 하고, 동왕 16년에는 등위를 가르기 위해 흑립에 옥·수정 등의 정자(頂子)를 장식하도록 하였다. 우왕 13년(1387)에는 명나라의 제도를 본떠 사모(紗帽)·단령(團領)을 착용하게 하고 대로써 품계를 가르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 원년(1392)에 공복제도를 정한 바 있다. 동왕 4년에 면복에 의한 제복제도를 정한 바 있으나, 시행되지는 않았다. 관복제정에 대한 노력은 태종·세종 때까지 이어져 백관의 조복·제복·공복·상복의 제가 완성된 것은 세종 8년(1426) 2월의 일이었다. 그 제도는 예종 때 간행된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그대로이다.

이것은 영조 때의 ≪속대전≫, 정조 때의 ≪대전통편 大典通編≫, 고종 때의 ≪대전회통 大典會通≫을 보더라도 그다지 큰 변천이 없었다. 그러나 한말 개화기 때 갑신의제개혁·갑오경장을 거치면서 관복이 간소화되었다. 을미개혁 이후에는 단발령과 양복이 허용되고, 1900년 문관 복장 규칙 제정, 구미식 대례복 제정 등으로 관복제도는 완전히 양복화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고려사』
『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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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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