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당상관, 북청판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모친상을 당하여 태인에 머무르고 있는 중에 임진왜란을 만나 전라감사 겸 순찰사(全羅監司兼巡察使) 이광(李洸)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이때 이광이 전라도병사 8,000명을 이끌고 공주까지 북상했다가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퇴군하여 전주에 이르자 백광언은 “군부(君父)께서 서쪽으로 파천(播遷)하셨는데 공은 수하에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퇴군하여 싸우려 하지 않으니 이 무슨 연고이시오.”라고 꾸짖어 북상할 것을 약속받고 다시 2만 여의 군사를 모아 전열을 재정비한 뒤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용인성(龍仁城) 남쪽 10리에 이르러 우군선봉장이 된 백광언은 좌군선봉장 이지시(李之詩)와 함께 문소산(文小山)의 적진을 협공하였으나 패전하여 모두 전몰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면 여세를 몰아 서울을 수복할 것으로 기대하였던 행재소(行在所)에서는 패전소식을 들은 뒤 평양을 떠나 의주로 향하였다. 1834년(순조 34)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모충사(慕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이재유고(頤齋遺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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