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목우(牧牛). 필명 백웅(白熊) · 흰곰. 대구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양주동(梁柱東) · 유엽(柳葉) · 이장희(李章熙) 등과 『금성(金星)』 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금성』 창간호(1924.1.)에 「청개고리」를 발표하는 한편 『개벽(開闢)』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대체로 과작에 속하였다.
그는 친구인 이상화(李相和)와 함께 대구에서 3·1운동 당시 대구 학생들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교도소 생활을 하는 등 항일저항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상화가 죽은 뒤에 대구 달성공원에 상화시비(尙火詩碑)를 건립하는 데 앞장섰고, 이상화와 이장희의 시를 정리하여 『상화와 고월(尙火와 古月)』 및 『씨뿌린 사람들』을 간행하는 등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향토 시인들을 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상화와 이장희의 시작품은 『상화와 고월』에 대부분 실려 있어서 이 방면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참고자료 구실을 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세계는 신선한 감각과 신비주의적인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며, 시형은 산문적인 호흡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 이를, 그 이를 보았어요/흰옷입고 초록띠 드리운 성자(聖者)같은 그 이를 보았어요/그 흰옷과 초록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알으시리이까?/오날도 은행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고양이는 나무가리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바람처럼 괴롭습니다.” 그의 대표작 「은행나무 그늘」의 한 연에서 볼 수 있듯이 서정적이고 신비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이 점은 그가 타고르의 시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번역한 사실과 연관된다. 즉, 타고르의 「그대의 뜻을」 · 「구름과 물결」 · 「적고 큰 사람」 · 「영웅」 등을 『금성』에 번역, 소개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평론 「춘원 이광수(李光洙)군의 중용(中庸)과 철저(徹底)를 읽고」( 『조선일보』, 1926.1.17.18.)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