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산 전투는 1951년 8월 중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중동부 전선의 양구북방 20㎞ 지점에 있는 백석산(1142고지)을 중심으로 한 남북으로 각각 6㎞ 지역에서 국군 제7사단과 제8사단(9월 28일 부대교대)이 공방간 전술적 요충인 백석산을 탈취하기 위해 북괴군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을 격퇴한 공격전투이다.
이 작전의 일환으로 국군 제7사단에 최초로 부여된 공격목표는 554고지였다. 이 고지는 피의 능선 좌측방의 중요고지로서, 이를 확보해야만 양구∼문등리를 잇는 29번 도로(현재 31번)를 장악할 수 있었다.
국군 제7사단 제8연대는 제1대대와 배속된 전차공격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8월 26일에 이 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국군 제7사단은 지난 8월 16일 이래 보류하고 있던 883고지에 대한 공격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미 제10군단장은 국군 제5사단에 가칠봉 일대를, 미 제2사단에 단장의 능선을, 그리고 국군 제7사단에 883고지를 각각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9월 16일 제8연대가 743고지를 탈취하고, 다음날에는 사단 좌일선 제5연대가 892고지를 탈취한 데 이어 제3연대는 3일간의 격전 끝에 마침내 목표 883고지를 탈취하였다.
미 제10군단장은 북괴군이 백석산을 확보하고 있는 한 미 제2사단 지역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국군 제7사단으로 하여금 백석산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국군 제8사단과의 진지교대를 앞두고 있던 국군 제7사단은 다시 공격준비태세를 갖추어 9월 24일부터 백석산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좌일선 제8연대는 중간 목표인 894고지를 공격하였으나 북괴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이를 탈취하지는 못하고, 그 좌측 696고지와 무명고지를 탈취하였다.
국군 제7사단은 25∼26일 양일간에 걸쳐 계속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제8연대가 백석산 정상의 2개 봉우리 중 좌측 봉우리를 탈취하였다가 빼앗기고, 27일에 다시 우측 봉우리를 공격하였으나 끝내 목표를 탈취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국군 제7사단은 국군 제8사단에게 백석산 공격임무를 인계(9월 28일 12:00부)하고 미 제10군단의 예비가 되어 캔자스선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9월 30일부로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전환되었다. 국군 제7사단과 임무 교대한 국군 제8사단은 백석산 공격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국군 제8사단의 주공인 제10연대는 9월 30일 좌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을 개시하여 목표의 지근거리까지 진출하였으나 북괴군의 집중 화력으로 저지당하게 되자 더 이상의 진출을 자제하면서 최종적인 돌격준비를 하였다.
10월 1일, 유엔 공군의 근접 항공지원 하에 공격을 재개한 제10연대는 목표정상의 좌측 봉우리를 탈취한 데 이어 우측 봉우리마저 탈취함으로써 백석산을 완전히 확보하였다. 이로써 국군 제8사단은 이날로 제3단계 작전을 모두 끝내고 어은산을 목전에 둔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차기작전에 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