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인본(印本).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및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본떠서 역서를 만들어왔는데 특히 세종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역서 편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당시에 역수(曆數)와 천문에 능통한 학자를 모아서 연구시켰다.
이로 인하여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은 공동으로 『태양통궤(太陽通軌)』·『태음통궤(太陰通軌)』·『교식통궤(交食通軌)』·『대통력일통궤(大統曆日通軌)』·『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칠정산내편정묘년교식가령(七政算內篇丁卯年交食假令)』·『칠정산외편』·『칠정산외편정묘년교식가령』·『중수대명력(重修大明曆)』 등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강보(姜保)에게는 『수시력첩법입성(授時曆捷法立成)』, 이순지에게는 또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을 편찬하게 하였다. 특히, 장영실(蔣英實)은 천문기구 제작에 특기를 발휘하여, 천문관측을 정밀하게 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천문을 관측하여 단독으로 역서를 편찬할 수 있는 기초가 세워졌다.
영조 때에 와서 시헌력법(時憲曆法)이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자, 1772년(영조 48)부터 10년간을 시헌력법으로 『시헌칠정백중력』을 만들었다. 이 역서는 1781년(정조 5)에 끝나므로 1780년에는 다시 『백중력』을 만들었다. 이것은 1780년부터 1904년까지 대통력법과 시헌력법을 함께 실어서 한 책에 엮어놓은 것이다.
이것들은 점점 발전하여 1782년『천세력(千歲曆)』을 만들게 되고, 1904년『만세력(萬歲曆)』이라는 이름으로 고쳐서 여러 해의 역서를 함께 추산하여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