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승려 원인(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장보고(張保皐)가 세운 법화원에서는 겨울에 『법화경』을 강하고 여름에는 『금광명경』을 강하였다.
이 법화회는 매년 11월 16일에 시작하여 다음해 정월 15일까지를 그 기한으로 삼았는데, 승려와 신도가 모두 참가할 수 있었다. 839년(문성왕 1)에 열렸던 법화회 때에는 성림(聖琳)이 경을 강의하는 법주(法住)가 되었고 돈증(頓證)과 상적(常寂) 두 사람이 논의(論議)가 되었다.
남녀의 도속(道俗)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낮에는 강의를 들었고 저녁에는 예참(禮懺)을 행한 뒤 『법화경』을 읽었다. 이 법화회는 비록 당나라에서 행한 것이었으나 모두 신라의 풍속에 의거하였다. 다만 황혼과 인시(寅時)의 예참만은 당나라의 풍속을 따랐으며, 그 밖에는 모두가 신라의 풍습대로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도 신라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법화회를 마치는 마지막 날에는 결원(結願)을 한 뒤에 법회 참석자 모두에게 보살계(菩薩戒)를 주었으며, 점심공양이 끝난 뒤에 모두 헤어져서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 신라의 법화회와 유사하게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동대사(東大寺)법화회, 흥복사(興福寺)법화회, 광륭사(廣隆寺)법화회가 있다.
이 법화회는 매우 폭이 넓은 대중교화의 대법회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의 불교의식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