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쌍룡놀이 (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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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벽골제 쌍룡놀이
벽골제 쌍룡놀이
민속·인류
놀이
문화재
음력 9월 9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벽골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된 단야낭자의 정신을 기리는 민속놀이.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벽골제쌍룡놀이(碧骨堤雙龍놀이)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민속문화재(1976년 04월 02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일원
목차
정의
음력 9월 9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벽골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된 단야낭자의 정신을 기리는 민속놀이.
내용

197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벽골제를 지키고 풍년과 인간 화합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던 단야(丹若)낭자의 정신을 기리는 놀이이다. 벽골제 쌍룡놀이는 해마다 10월 중순(음력 9월 9일)에 거행되는 벽골문화제전(1998년 현재 38회)의 주요 행사이다.

벽골제는 우리 나라 저수지의 효시(嚆矢)로 충청북도 제천의 의림제(義林堤), 경상남도 밀양의 수산제(水山堤)와 함께 삼한시대의 3대 수리시설의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현재 김제시 월촌동과 김제군 부량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원평천을 가로막은 벽골 제방 하류지점 신털미산[草鞋山]북쪽 끝 큰 웅덩이 용추(龍湫)에 백룡(白龍)이 살고 있었는데 이 용을 '벽골룡'으로 칭하였다. 한편으로 벽골제 중간 제방 하류지점인 부량면 용골마을 남단의 연포천(蓮浦川)에는 청룡(靑龍)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두 웅덩이를 가리켜 쌍룡추(雙龍湫)라 하고, 백룡과 청룡을 쌍룡이라 불렀다.

백룡은 온후(溫厚)하여 인명을 수호하며 재난을 막아 주었으나, 청룡은 포악하고 심술궂어 재난을 일으키며 제방과 인명을 해쳤다. 백룡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룡의 난폭한 행동은 계속되어 끝내는 쌍룡의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와중에 붕괴 직전에 놓인 벽골제 보수공사를 하게 되는데, 축제(築堤) 때에는 반드시 처녀를 희생제물(犧牲祭物)로 바쳐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가져온다는 속신에 의해 스스로 제물이 된 김제 태수의 외동딸 단야의 희생정신에 감복한 청룡은 물러나고 인신 제물의 악습도 없어지게 되어 평화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놀이 용구인 용의 제작은 옛날에는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 엮어 둥그렇게 휘어 중간에 띠장(가로 대는 나무)을 대어 몸통을 만든 후 그 위에 광목을 입혀서 물감을 칠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닐로 제작하여 행사 때마다 쓰고 있다. 제의는 아침 7시쯤 벽골제 현장에서 진행하며, 시장이 초헌관이 되고 시의장과 동진농조조합장이 종헌관이 되어 벽골제제향홀기(碧骨堤祭享忽記)에 의해 진행된다.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쌓은 지 오래 되어 붕괴 직전에 놓인 벽골제 보수공사를 위해 조정에서는 국내에서 으뜸가는 기술자인 서라벌의 원덕랑(元德郞)을 현지에 급파한다. 당시 김제 태수 유품(由品)에게는 '단야'라는 아름다운 외동딸이 있었다. 단야는 원덕랑을 연모하였지만 원덕랑은 고향인 서라벌에 월내(月乃)라는 약혼녀가 있어 단야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옛날부터 이러한 큰 공사는 반드시 처녀를 용추에 제물로 바쳐 용의 노여움을 달래어야 공사가 순조로운데, 원덕랑은 이것을 미신이라 하여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공에 가까운 둑이 곧 무너지게 될 것이라 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때 서라벌에서 월내낭자가 남장을 하고 약혼자 원덕랑을 찾아 왔다는 사실을 안 태수는 월내낭자를 밤에 보쌈을 하여 용에게 제물로 바쳐 딸의 사랑을 성취시키고 백성들의 원성도 진정시키려는 계략을 세웠다. 이 계략을 알게 된 단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민 끝에 제방의 완공과 원덕랑의 행복을 위해 월내낭자 대신 자신이 보쌈을 당하여 제물로 바쳐진다. 그 뒤 보수공사는 준공을 보게 되고, 원덕랑은 월내낭자와 혼인하게 된다.

지방에 따라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설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개성<지내산 전설>, 청주<지네장터전설>, 제주도<김녕사굴전설>과 무속신화 <토산당본풀이> 등과 비교할 때, 인신제물의 악습이 없어지게 된 유래담이라는 점과, 제물의 형태가 처녀 희생제물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런데 제물을 받는 신이 대개는 지네 · 구렁이 등이지만 여기에서는 용으로 나타난 점이 다르다.

이것은 논농사 초기에 발생한 향토신사(鄕土神祀)의 민속으로 수리관개(水利灌漑)와 관련된 '용'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또 악신 제거의 영웅적 행위를 하는 존재가 두꺼비 같은 동물이거나 영웅설화에서 보이는 무력적 대항이 아닌, 살신성인적인 여성의 희생행위로 악신을 감복시켰다는 점에서, 현상에 대해 수동적인 도작문화(稻作文化:벼농사 문화)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간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부정 · 소멸되어 가는 <심청전> · <춘향전> · <무영탑 설화> 등에 나타난 복합적 충 · 효 · 열이 굴절되어 수용된 형태로 풀이할 수도 있다.

197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1975년 9월 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속놀이 부문 최우수상인 문공부장관상(지금의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김제시사(金堤市史)』
『전북의 민속예술』(전라북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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