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지내는 대상은 민족의 시조신(始祖神)인 단군 한배검으로, 제천의식을 행함으로써 겨레의 근본이 되는 조상신의 은덕에 보답한다고 하여 ‘보본(報本)’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제단에 있는 석함(石函) 속에 대종교의 경전인 《삼일신고 三一神誥》가 1,000여 년 동안 비장되어왔다고 한다.
원래 《삼일신고》는 한배검이 홍익인간의 큰 뜻으로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그 가르침을 받게 하고, 고시(高矢)는 동해안에서 청석(靑石)을 캐어 와, 신지(神誌)가 그 돌에 새겨 만든 것이 고문석본(古文石本)이다.
그 뒤에 부여의 왕수긍(王受兢)이 은문(殷文)으로 단목(檀木)에 새겨 읽게 하였는데, 그것이 은문단본(殷文檀本)이다. 그러나 이들 두 가지 고본은 그 뒤 병화로 소실되었다 한다.
발해의 문왕이 태조의 찬문(贊文), 왕제(王弟)인 대야발(大野勃)의 서문, 현신(賢臣) 극재사(克再思)의 독법(讀法), 임아상(任雅相)의 해석 등을 한데 엮은 다음, 자신이 지은 《봉장기 奉藏記》를 덧붙였다. 이것이 어찬진본(御贊珍本)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문왕은 이전의 석 단이본(石檀二本)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739년인 대흥(大興) 3년에 어찬진본을 보본단 석실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배검의 묵시(默示)를 받아 신사(神師), 백봉(白峯)이 찾아내었고, 1905년에 이르러 이를 대종교 초대 교주 나철(羅喆)에게 전함으로써 《천부경 天符經》과 함께 대종교의 주요 경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