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7년(충숙왕 14) 우부대언(右副代言)으로서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일로 하여 왕이 4년 동안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시종하였던 여러 신하들 가운데 특히 공이 있는 자에게 공신호를 내릴 때 첨의정승(僉議政丞) 윤석(尹碩) 등 25인과 함께 1등공신에 봉해졌다.
이로부터 왕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져 폐신(嬖臣) 김지경(金之鏡)·이인길(李仁吉)·고용현(高用賢)과 더불어 관료의 인사행정을 도맡아보게 되었는데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았으므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1343년(충혜왕 복위년 4) 충혜왕(忠惠王)이 복위한 뒤 새 궁궐인 북전(北殿)을 지어놓고 강윤충(康允忠)과 민환(閔渙)을 시켜 이곳에 필요한 노비들을 급히 구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는 이미 권세에서 밀려난 데다 민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서연(書筵)을 설치하고 우정승(右政丞) 채하중(蔡河中) 등 48인으로 하여금 날짜를 정하여 번갈아가며 시독(侍讀)하게 하였는데 밀직부사로서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안축(安軸)과 함께 지밀직사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