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평 28평, 2층 목조 기와집. 196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고도 한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인수봉과 백운대로 가는 입구에 있다.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가 1911년 가을에 2만 7946평의 밭과 임야를 구입하여, 1912년 여기에 건물을 세우고 그 이름을 봉황각이라고 하였다. 천도교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남긴 시문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오세창(吳世昌)이 썼는데, ‘봉(鳳)’자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황(凰)’자 또한 당나라 명필 회소(懷素)의 서체를, ‘각(閣)’자는 송나라 명필 미불(米芾)의 서체를 본뜬 것이다.
손병희는 우리나라가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뿌리내리게 하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손병희는 또한 1912년 4월 15일부터 이곳에서 지방교역자 21명을 선발, 지명하여 수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는데, 1914년 4월까지 3년 동안에 걸쳐 483명을 수련시켰다.
손병희 자신도 1912년부터 7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천도교의 발전책과 구국운동을 구상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하였으며, 특히 3·1운동 때 이곳을 거쳐간 간부들이 주도적 구실을 하여 3·1운동과 인연을 가진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