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근당’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부군당(附君堂)’·‘부근당(付根堂)’·‘부강당(富降堂)’ 등으로도 표기한다.
『증보문헌비고』에 “본조 풍속에 도하 관부들에는 으레 수호신을 모신 한 작은 숲을 두고 그 사당에 지전(紙錢 : 종이돈)을 걸고 부군이라 일컫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부군’이란 본래 한(漢)나라 태수의 칭호였다고 하나, 부군당이란 옛날 관청 내에 두던 사당의 이름인 듯하다.
현재 부군당이라는 명칭은 다른 데서는 보이지 않고 서울에서 당산동·동빙고동·서빙고동·보광동·수유동·창전동·이태원동 부군당 등 10여건이 조사, 파악되었다. 부군당에 봉안된 부군신은 마을을 보호해 주는 무신적(武臣的) 성격과 함께 풍요신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
무신적 성격은 굿을 할 때 부군신을 놀리는 ‘부군거리’에서 무당이 입는 무복이 장군의 복식인 구군복(具軍服)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부군당신의 생식적 풍요 요소는 부군당에 나무로 깎은 남근(男根)을 벽에 걸었다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기록과 일본인 무라야마(村山智順)의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 부록 사진에서 알 수 있다.
부군당의 제의는 봄·가을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내는데 규모가 큰 당에서는 3년마다 한 번씩 대규모의 당굿을 올린다. 서울·경기지역의 대표적인 부군당으로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1동에 있는 부군당을 꼽을 수 있다.
이 당은 이태원 1,000여 호에서 제의 비용을 모아 3년마다 당굿을 하고 마을회의에서 뽑힌 제관 12명이 당제를 주관한다. 선출된 제관은 당제 15일 전에 대동우물을 퍼내고 왼새끼에 백지술을 끼운 금줄을 쳐서 잡인을 금하고, 새로 괸 우물물을 길어다 ‘조라’를 담가 제를 올린다.
당제는 유교식으로 하며 당굿은 일반 당굿과 달리 부군신을 위한 ‘부군거리’가 추가되며, 끝에 ‘황제풀이’를 하고 나서 ‘뒷전’을 하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