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부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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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천마산(天摩山)에 있었던 조선후기의 속암으로 1619년에 창건되고 1854년 혜암이 중수한 암자. 봉인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목정배 (동국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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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천마산(天摩山)에 있었던 조선후기의 속암으로 1619년에 창건되고 1854년 혜암이 중수한 암자. 봉인사.

내용

원래는 봉인사(奉印寺)의 속암(屬庵)이었다고 한다. 「탑법당이건기문(塔法堂移建記文)」에 의하면, 봉인사에서는 1619년(광해군 11)에 석가법인(釋迦法印)을 봉안(奉安)한 법인탑을 세웠는데, 이를 수호하기 위하여 초창된 사찰이 봉인사이고 이와 동시에 개창한 것이 부도암이 아닌 가 추측되고 있다. 그 뒤 1854년(철종 5)에 혜암(慧庵)이 중수하고, 1864년(고종 1)에 혜암과 환옹(幻翁)이 탑과 법당을 창건하였다.

1925년에는 주지 동파(東坡)가 신도들의 시주로 중수하였다. 1928년에는 이씨 왕가에서 나라를 위하여 치성(致誠)하라는 뜻으로 봉인사에 향촉(香燭)을 하사하였는데, 사승(寺僧)들이 황촉등(黃燭燈)을 법당 중앙에 달고 밤을 새우다가 불이 나 20여 칸의 대법당과 응진전(應眞殿)·시왕전(十王殿), 기타 동산(動産)까지 모조리 불타고 큰방과 노전(爐殿) 두 동만 남게 되었다.

그 뒤 왕가에서는 금곡(金谷)에다 홍릉(洪陵)을 만들기로 하였는데, 이때 절 아래 동네에 사는 이천응(李天應)이 폐사가 되다시피 한 이 절의 건물을 헐어 홍릉전각(洪陵殿閣) 용도로 매각하고, 또 절의 땅과 산림 전부를 자기의 소유로 하였다.

그리고 부도탑(浮屠塔)도 1860년경에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에 거주하는 전(前)영의정 이유원(李裕元)의 차남 호영(琥榮)이 당시 견성암(見聖庵)의 승 환송(喚松)과 공모하여 사리장치(舍利藏置) 등을 꺼내어 매각함으로써 훼손되고 말았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윤행순(尹行醇)이 쓰고 조윤형(曺允亨)이 새긴 풍암대사부도비(楓巖大師浮屠碑)가 있었으며, 또 금종(金鐘)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원래 강원도 김화(金化)의 수태사(水泰寺)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 - 「奉印寺浮圖庵記」

  •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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