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명익(李命益: ?~?)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호는 소리자(素履子)이다. 조부는 정정공(靖貞公) 이의만(李宜晩)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원사 이득원(李得源), 어머니는 강화 최씨 최명기(崔命基)의 딸이다. 젊어서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독서에 침잠하며 시문을 창작했다.
이명익의 외손 편자 김정원(金鼎元: 176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종오(宗五)이다. 1795년(정조 19) 식년 진사시에 급제했고, 1807년(순조 7)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헌납, 정언, 지평 등을 거쳐 1819년(순조 19)에는 운산군수를 지냈다. 군수로 재직할 때 감시(監試)에서 호적을 위조해 응시한 유생이 있었던 것이 발각되어 이 일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
『부부고(覆瓿稿)』는 5권 5책의 필사본이며 권말에 편찬자이자 저자의 외손인 김정원의 서문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1838년(헌종 4) 저자의 후손인 이병현(李秉鉉)이 초고를 가지고서 저자의 외손인 김정원을 찾아가 편집을 부탁했고, 이에 김정원이 원고를 편집하고 서문을 썼다. 그러나 간행까지는 이르지 못하여 이 책은 정서본 원고로만 남아 있게 되었다.
권1~2는 시로 160제(題)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영사시(詠史詩)와 영물시(詠物詩)의 비중이 높다. 또한 서문이 부기(附記)되어 있어 창작 당시 정황을 상세히 알려 주는 작품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권3은 서(書) 17편, 설(說) 6편이 수록되었는데 특히 저자의 학문 방법을 설명한 「학설(學說)」이나, 역법과 주역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의례문답(疑禮問答)」은 설전(設奠)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권3은 서(序) 12편, 기(記) 7편, 발(跋) 8편, 잡저(雜著) 18편, 제문(祭文) 28편이다. 발과 잡저에는 여러 문체가 섞여 있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기문 중에는 「월악산기(月岳山記)」, 「백운산기(白雲山記)」와 같이 산수기의 비중이 높다.
권4는 제문 25편, 애사(哀辭) 11편, 행장(行狀) 7편이다. 애사 역시 여러 문체가 섞여 있으며, 행장에는 저자의 가족 및 친인척을 위한 작품이 많아 저자의 가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권5는 행장 4편, 지갈(誌碣) 8편과 「경사석의(經史釋義)」가 수록되었다. 「경사석의」는 15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가 경전 및 중국 고대사에 대한 저자의 학자적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해 주는 저술로서 가치가 높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이명익의 삶과 학문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이명익의 저술들이 실려 있어 그의 학자적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