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사학회 ()

근대사
단체
부산에서 역사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술단체.
목차
정의
부산에서 역사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술단체.
연원 및 변천

당초 1958년에 발족한 역사학회 부산지회로 출발하였다. 서울에 있는 역사학회의 한 지회(支會)였으므로 회원 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며, 활동도 미미하였다.

이후 매년 춘계·추계 발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여기서 발표된 논문 중 역사학보에 실려 좋은 평가를 받은 논문도 있었다.

한편, 1970년대 중반 부산에 전문대학을 포함한 여러 고등교육기관이 신설되고, 또 기존 대학의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젊은 학생들이 계속 배출되자 부산지방을 대표하는 역사학 연구 학회의 설립이 요청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1975년 12월에 열린 역사학회 부산지회 총회에서 학회 명칭을 ‘부산사학회’라 개칭하고 회칙을 변경하기로 논의하였으며, 그 결과 1976년 3월 총회에서 새로운 회칙이 통과되었다.

이 회칙에 의하면 회원은 정회원, 준회원, 명예회원으로 하고, 임원으로서 회장 1명, 간사 약간 명을 두며, 연2회 이상의 발표회를 갖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동년 5월과 12월에 각각 연구발표회가 있었으며, 이듬해 1977년 2월에는 학회지 ≪부산사학 釜山史學≫ 제1집이 발간되었다.

학회지 표지의 제자(題字)는 동아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고려사≫ 초쇄본(初刷本)에서 집자(集字)한 것이었다(단 제8집부터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선조수정실록 宣祖修正實錄≫에서 집자한 제자를 쓰게 됨).

이후 연 2회의 연구발표회 개최와 연 1회의 학회지 발간(1월∼3월)이 순조롭게 지속되었다. 특히 1986년부터 학회지를 6월과 12월 연 2회 발간하기 시작하여 1999년 12월까지 제37집을 발간하였다.

1999년까지 ≪부산사학≫에는 한국사 93편, 동양사 58편, 서양사 51편, 고고학 5편 등 논문 207편이 실렸고, 그밖에 서평, 조사보고, 자료소개 등도 20여 편 실렸다.

학회 운영을 담당하는 임원의 구성이나 명칭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83년 6월 회장 외에 평의원 11명과 간사 3명(총무간사 1명, 연구간사 1명, 출판간사 1명), 감사 2명을 두기로 하였다. 1993년 3월에는 평의원을 폐지하고 간사를 두어 그 인원을 7명(총무간사 1명, 연구간사 4명, 출판간사 1명, 섭외간사 1명)으로 증원하였다. 1995년 11월에 회장을 대표이사, 간사를 이사(理事)로 개칭하였다.

현황

창립 당시 학회 회원은 불과 몇 십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1986년 2월 121명에 달했다. 1999년 12월 현재 일반회원과 종신회원을 합해 총 회원 수는 350여 명에 이른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눌원문화재단(訥園文化財團)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집필자
이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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