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 ()

목차
불교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부설거사로 널리 알려진 승려.
이칭
의상(宜祥)
이칭
광세(光世), 부설거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부설거사로 널리 알려진 승려.
내용

뒤에 부설거사로 널리 알려진 우리 나라 대표적인 거사(居士)이다. 성은 진씨(陳氏),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 경상북도 경주 출신.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으며,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불국사에서 원정(圓淨)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영희(靈熙) · 영조(靈照) 등과 함께 지리산 · 천관산(天冠山) · 능가산(楞伽山) 등지에서 수 년 동안 수도하다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을 순례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 중,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들판이 있는 두릉(杜陵)의 구무원(仇無寃)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집에 있는 18세의 딸 묘화(妙花)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으나 부설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렸으며, 그 때부터 부설을 사모하여 함께 살고자 하였다. 부설이 승려의 본분을 들어 이를 거절하자 묘화는 자살을 기도하였다.

이에 부설은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따라 제도하는 것’이라 하여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15년을 살면서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은 뒤 아이들을 부인에게 맡기고 별당을 지어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그 뒤 영희와 영조가 부설을 찾아왔을 때 세 사람은 서로의 도력을 시험하였다. 질그릇 병 세 개에 물을 가득 채워서 대들보에 달아두고 병을 돌로 쳐서 물이 흘러내리는지 아닌지로 도력을 가늠하기로 하였다.

영희도 영조도 병을 돌로 치자 물이 흘러내렸지만 부설이 그 병을 치자 병은 깨어졌으나 물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은 참된 법신에 생사(生死)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설법을 한 뒤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入寂)하였다.

영희와 영조가 다비(茶毘)하여 사리를 변산 묘적봉(妙寂峰) 남쪽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은 그 때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으며, 부인 묘화는 110세까지 살다가 죽기 전에 집을 보시하여 절을 만들었다. 이 전기는 조선 후기에 편찬한 『영허대사집(暎虛大師集)』 속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영허대사집(暎虛大師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