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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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부용당 터
해주 부용당 터
건축
유적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조선전기 해주목사 윤철이 건립한 해주읍성의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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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조선전기 해주목사 윤철이 건립한 해주읍성의 누정.
내용

본래 해주읍성(海州邑城) 앞 누각으로, 1500년(연산군 6) 목사 윤철(尹哲)이 건립하였으며, 1526년(중종 21) 목사 김공성(金公聖)이 개축하였다.

처음에는 연못 북쪽 언덕에 세웠는데, 후에 연못 가운데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누각을 지어 처음 건물과 나무다리로 연결시켜 놓았다.

부용당이란 ‘연못 안에 세운 건물’이라는 뜻이다. 1500년에 연못 바깥에 세운 누정을 ‘응향각(凝香閣)’, 20년 후 연못 안에 세운 누정은 ‘부용당’이라고 하였으나 점차 두 건물을 합쳐 부용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용당의 앞채는 연못 속에 ㄱ자형으로 지었는데,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4칸이고 딸린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뒤채는 연못 바깥에 지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연못 가운데 세운 누정은 돌기둥 위에 흘림식 나무기둥을 세우고, 2익공 바깥도리식 두공(枓栱)을 짜올렸다.

꽃가지모양인 상하단의 제공(諸貢)에는 연꽃을 재치있게 새겼다.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에는 한 개의 뿌리에서 돋아난 10개의 연줄기와 잎사귀가 자연스럽게 얽힌 속으로 연꽃봉오리가 피어난 것처럼 대단히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는데 아주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건물 안에는 복판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 넓은 공간을 형성하였으며,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천장은 통천장으로 하여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붕은 합각지붕이나 누정의 평면에 맞게 박공(朴工)을 정면에 놓고, 뒷면은 서쪽으로 뻗어나간 지붕에 자연스럽게 이어놓아 장쾌한 느낌을 주게 하였다. 연못가에 세운 누정은 2익공 주도리식 두공에 합각지붕을 얹었는데, 연못 안에 세운 누정과 잘 어울린다.

한편, 부용당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란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1593년(선조 26) 8월 18일에서 9월 22일까지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연유로 ‘駐畢堂(주필당)’이라는 현액이 내려졌으며, 연못가에는 선조대왕주필기적비(宣祖大王駐畢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16세기의 발달된 누정형식과 건축술을 잘 갖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로서, 아름다운 주위환경과 잘 어울려 한때 해서팔경(海西八景)의 하나로 일컬어졌으나, 6·25 때 소실되어 돌기둥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재관리국, 1985)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집필자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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