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玄鎭健)이 지은 단편소설. 1925년 1월 ≪개벽≫ 제55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왕에 다루어온 지식인의 자전적 소재를 청산하고 하층민의 삶에 눈을 돌린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작자의 소설 중에서는 드물게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온 지 한달 남짓한 열다섯의 어린 새색시 순이는 성적인 미숙함과 고된 노동으로 고통받는다.
새벽부터 쇠죽을 끓이고, 물긷고, 논에 점심을 내고 하여 밤에 지쳐 늘어지면 밤새 남편이 어린 몸을 탐내는 것이다. 순이는 그 ‘원수의 방’이 무서워 헛간에 숨기도 하지만, 결국 그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무서운 밤을 지내야만 하게 된다. 어느 날 점심 고리를 이고 논둑길을 건너뛰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깨어보니, 또 그 ‘원수의 방’이었으므로 정신 없이 뛰어나오다가 그릇을 깨었다고 시어머니한테 두들겨 맞는다. 그날 저녁 부엌에서 일하다가 문득 ‘원수의 방’만 없애면 그 무서운 밤을 겪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성냥을 품속에 감춘다. 그날 밤,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집은 활활 타오르는데, 뒷집 담 모서리에서 순이는 근래에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 날뛴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집 민며느리로 들어간 어린 소녀가 힘에 겨운 노동과 남편의 과도한 성행위, 시어머니의 몰이해와 학대 등으로 희생되는 불행한 운명을 묘사하였고, 집에다 불을 지르는 행위로써 인습에 반항하는 인물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작가의 사실주의문학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소녀의 불행한 운명을 중심으로 농촌사회의 어두운 현실이나 전통적인 관습 및 남성의 횡포에 대한 과감한 저항을 사실적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하여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쇠죽솥에 불을 지피고 불붙는 모양을 흥미 있게 구경하는 순이의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를 보인 점, 그리고 샘물에서 송사리와 희롱하는 천진난만한 모양과 송사리를 태질하는 잔학한 모습의 대비를 통하여 순이의 불행을 예시해주는 대목들은 그의 뛰어난 단편소설적 기교를 말하여준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의 궁핍한 농촌 상황보다는 민며느리제도의 비극에 그 초점이 놓여져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한계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