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에 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골품은 진골이었으며, 귀족세력의 대표로서 왕위계승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반란을 도모한 것으로 보아 성은 김씨일 것으로 추측된다.
645년(선덕여왕 14)에 상대등에 취임하여 647년에 선덕여왕이 여왕으로서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스스로 왕위에 즉위하고자 염종(廉宗) 등과 더불어 정치적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내란으로까지 발전하였는데 김유신(金庾信)의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선덕여왕은 죽고, 반란에 연좌되었던 30여명은 진덕여왕 즉위년(647)에 모두 죽임을 당하였으며, 특히 비담의 경우는 9족이 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