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에 따르면, 비왕은 서기전 109년에 위만조선에 왔던 한(漢)의 사신 섭하(涉何)를 전송하다가 섭하에게 살해된 장(長)이라는 인물의 관명이다. 위만조선의 관명으로서 비왕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비왕 장을 살해한 섭하가 한으로 돌아가서, 위만조선의 장(將)를 죽였다고 보고한 기록뿐이다. 이를 통해서는 비왕이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사기』에 따르면, 흉노에도 비왕이라는 존재가 있었는데, 「흉노열전(匈奴列傳)」을 비롯한 흉노 관련 기록 가운데, 비왕을 비소왕(裨小王), 소왕(小王), 흉노왕(匈奴王), 비장(裨將) 등과 혼용한 사례가 있다. 『사기색은(史記索隱)』은 흉노의 비왕을 소왕이라고 보면서도 대략 비장과 같다고 전한다.
위만조선 비왕의 성격에 관해서는, 비왕이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단편적인 기록과 함께, 흉노 비왕의 사례를 참고하여 크게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왕'이라는 단어에 유의하며 비왕을 왕의 측근 혹은 왕족에게 주어진 칭호로서 부왕(副王)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 경우 왕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지만, 관료 조직에 속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편, 비왕을 왕족에게 주어진 작호(爵號)로 보면서, 일정 지역을 통치하는 일종의 제후왕으로 보기도 한다.
둘째,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비왕을 왕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 조직에 속하는 관직으로 보는 해석이다. 단, 비왕 직의 구체적인 직무에 관해서는 왕을 근시(近侍)하는 무관으로 보기도 하고, 문관 직인 상(相)과 무관 직인 장군(將軍) 아래에서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한 실무직으로 보기도 한다.
셋째, 비왕을 자신이 속한 읍락을 자치적으로 이끌던 족장으로 보는 해석이다. 자치체를 영위하던 상이 왕에 대해 그러하듯, 비왕도 상의 일정한 통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비왕이란 명칭을 위만조선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본다. 소왕적(小王的) 성격의 흉노인을 한인(漢人)들이 비왕이라고 불렀듯이, 자신의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위만조선의 족장을 한인들이 비왕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왕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위만조선의 정치 구조와 관직 체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비왕은 위만조선의 성격을 규정하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