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궁(安鶴宮)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인 대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다. 한 변 622m, 전체 둘레 2.488㎞의 마름모꼴 평지성(平地城)이다. 성벽 바닥 부분의 너비는 8.2~10m이고, 성벽의 남은 높이는 약 6m이다. 성문은 남벽에 3개, 그 외 성벽마다 1개씩 설치되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루(角樓)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 내부에는 동궁, 서궁, 남궁, 북궁, 중궁 등 5개의 건축군(建築群)이 분포하며, 51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그 외 정원과 연못, 우물 등이 확인되었다. 일반 거주구역과 관청구역을 포함하지 않는 전형적인 왕궁이나 궁성으로 해석된다.
일찍이 안학궁을 고구려 전기 평양성의 평지성으로 이해하면서 그 조성 시기를 3세기 혹은 평양 천도(427년) 당시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427년부터 고구려가 장안성(후기 평양성)으로 천도하는 567년까지 안학궁이 고구려의 평지 도성으로 사용되었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안학궁에서 채집 · 출토된 대부분의 기와 및 와당(瓦當)을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안학궁 유적 밑에서 5~6세기의 고구려 돌방무덤이 확인되었고, 특히 안학궁이 이 돌방무덤들을 파괴하며 조성된 흔적이 확인됨에 따라 안학궁의 조성 시기는 6세기 이후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개와(改瓦) 가능성 여부와 돌방무덤 출토 토기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안학궁을 문자왕(文咨王, ?~519) 대에 새롭게 조성된 왕궁 혹은 평원왕(平原王, ?~590) 대에 조성된 별궁으로 보기도 하고, 고구려시대가 아닌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안학궁의 건물 배치 양상이 수당(隋唐) 대에 폐기된 북위(北魏) 방식 태극전과 동서당 제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서 그 조성 시기를 6세기 이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