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태조왕대 고구려에 투항한 갈사국의 왕족.
가계 및 인적 사항
내용
1~3세기 고구려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변국들이 고구려에게 복속된 뒤, 이른바 고구려의 나부(那部)로 재편되었다. 우태는 패자(沛者) 등과 함께 나부의 지배 세력에게 수여된 관등 중 하나이며, 조의(早衣)보다 상위, 패자보다는 하위의 관등이다.
대무신왕 5년(22)에 고구려에 투항한 부여왕의 종제(從弟)가 만여 명을 이끌고 왔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백여 명으로 출발한 갈사국왕의 세력 규모는 도두대에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므로, 도두에게 패자가 아닌 우태가 수여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 고구려조에는 '우태(優台)'로 표기되며, '상가-대로-패자-고추가-주부-우태-승-사자-조의-선인'의 순서 가운데, 여섯번째로 등장한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
- 『삼국지』
단행본
- 여호규,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신서원, 2014)
-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한나래, 2004)
- 김철준, 『한국고대사회연구』(지식산업사, 1975)
논문
- 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の史的展開」(『朝鮮學報』 86, 朝鮮學會, 1978)
주석
-
주1
: 함경북도 압록강 부근의 옛 이름. 부여 금와왕의 막내 아들이 남하하여 갈사국을 세운 곳이라 전하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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