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등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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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에 있는 조선전기 석축 성곽터.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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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에 있는 조선전기 석축 성곽터. 시도기념물.
내용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등성은 주위 986m, 높이 5m, 너비 5m의 석성으로, 삼한시대 독로국(瀆盧國)의 왕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전해져 왔으나 이를 고증할 만한 문헌은 없다.

그리고 최근 거제군의 동헌 건물인 기성관(岐城館)을 보수하는 도중 발견된 객사(客舍) 상량문(上樑文)에 의해 거제가 변진(弁辰) 24국의 하나인 독로국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었지만 이 성과 관련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문헌상으로 볼 때 사등성의 축조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 문종 원년 5월조가 있다.

“본읍은 옛적에는 섬 안의 수월리(水月里)에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병오년(丙午年)에 사등리로 옮겨 관사(館舍)를 세우고 성과 연못을 수축하는 일이 무진년(戊辰年)에 이르러 끝이 났습니다. 이번에 도체찰사(都體察使) 정본의 심정으로 인하여 또다시 고정리(古丁里)로 옮겨 쌓으려 합니다. 본읍 사람과 관리 · 노비들이 이미 모두 정주하여 창성하게 되었는데 지금 읍을 옮기게 하시면 영선(營繕)이 끝이 없습니다. 원컨대 옮기지 말게 하여 백성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는 수 없으면 육지로 나가 거처를 옮겨 살도록 도모하여 주십시오.”

이 기사에 따르면 고려 말 왜구를 피하여 거창으로 피난갔던 거제도민이 조선조에 들어와 왜구의 침구가 점차 줄어들게 되자 도내의 수월리에 목책을 세워 거주하다가 1426년(세종 8)에 현의 치소를 수월리에서 사등으로 옮기고 축성을 시작하여 거제읍성으로 사용하였으며 1448년에 완성한 이후 다시 고현성으로 치소를 이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사등성은 1426년에서 1448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성은 평지의 들판에 쌓은 석축성으로 동 · 서 · 남 · 북의 문지에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을 구비하고 있어 입구가 외부로부터 완전히 엄폐되어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卍자형을 이루고 성 주위에는 인접한 들판보다 20m 폭으로 낮게 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를 만들어 수비를 강화하였다. 성안에는 학교와 마을이 있으며 성밖은 모두 논밭인데 1980년 국고의 지원으로 일부 성곽을 복원하고 성곽 주위의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현재 보호관리되고 있다.

집필자
심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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