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을 흠모한 석순옥은 교원 생활을 그만두고 그의 간호원 되기를 자처한다. 순옥의 정신적 사랑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안빈은 그녀의 피를 검사하지만, 숭고한 사랑을 의미하는 아우라몬 대신에 육체적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겐이 검출된다. 그 후 안빈, 순옥, 안빈의 처 옥남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되나, 옥남이 폐병으로 눕고 순옥이 그녀를 간호하면서 오해가 풀린다. 남편에 대한 순옥의 사랑이 종교적 애정임을 확인한 직후 옥남은 죽는다. 그러나 옥남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세간의 오해는 증폭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순옥은 사랑하지 않는 허영과 결혼한다. 순옥은 결혼 후에야 허영의 문란한 생활을 알게 되지만, 그런 허영에 대해서도 그의 본처 이귀득과 시어머니 한씨에 대해서도 진심을 다하며 감내한다. 그러나 귀득, 허영, 한씨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자, 순옥은 자신의 딸 길림과 함께 안빈의 병원으로 되돌아온다.
『사랑』은 이광수가 쓴 최초의 전작(全作) 장편소설이다. 이광수는 1938년 8월 상편을 탈고하고, 이듬해 4월 하편을 마무리했다. 이 소설은 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자하문 밖 산장에서 병든 몸을 다스리며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것은 1937년 6월이고, 병보석으로 출감해 입원 중이었던 안창호가 숨진 것은 1938년 3월의 일이다. 『사랑』은 안창호의 서거 직후에 집필되기 시작해 1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의 첫 장편소설 『무정』에 등장하는 함교장의 모델이 안창호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랑』은 작가의 장편소설 창작 이력은 물론 그 정신사적 측면에서도 가장 정점에 해당하는 소설이라 평가된다.
삼각관계는 『무정』 이후 이광수 장편소설의 주된 모티프지만, 『사랑』에 이르러 남녀 간의 애정 갈등은 종교적 승화로 완결된다. 육체적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안빈과 그를 본받아 온갖 시련을 감내한 후 마침내 정신적 사랑의 화신이 된 순옥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지닌 종교적,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명료하게 구현해 낸다. 소설 결말에서 순옥과 안빈이 재회한 북한 요양원과 그들의 만찬은 인류애적 사랑을 지향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연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무정』의 삼랑진 대화합에 대한 오마주라 할 만하다.
다른 한편, 『사랑』이 정신적, 종교적 사랑의 서사화라는 사실 이면에 이광수가 보여준 근대 과학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도 주목된다. 안빈은 작가이자 의학 박사로 등장하지만 인간 심리와 감정,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후자의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그는 혈액의 방향(芳香)과 성분 분석을 통해 환자의 마음과 신경을 제어함으로써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안빈의 가르침에 따라 순옥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허영의 피를 뽑아 애정의 순도, 즉 아우라몬이나 아모르겐의 함량을 측정하는 대목은 근대소설사에서 유례가 없는 장면이다. 이는 초기 장편소설 『무정』과 『개척자』부터 이어진 이광수의 과학적,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