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악장 중 속악의 하나이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와 권125 열전(列傳) 38 간신 오잠(吳潛)조에 5언절구의 한시 형태로 ‘신성(新聲)’이라 하여 수록하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충렬왕 때에 지어진 노래로서, 간신 오잠의 무리가 왕과 더불어 궁중의 연악(宴樂)으로 즐기기 위해 재래의 전승민요를 한시 형태로 새로이 개작한 것이다. 오잠의 무리들은 가무(歌舞)에 능한 남장별대(男粧別隊)를 조직해서 그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밤낮으로 즐겼다고 한다.
이때 「삼장(三藏)」도 함께 즐겼는데 이는 속요인 「쌍화점(雙花店)」 2연과 거의 일치하되 우리말 노래를 7언절구의 한시 형태로 새로 개편해 부른 노래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성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사룡」은 한역시가 아니라 전승민요를 한시 형태로 개작한 가요임을 알 수 있다. “뱀이 용의 꼬리를 물고서 태산의 묏부리를 지나갔다고 들었노라(有蛇含龍尾聞過太山岺) 만 사람이 각각 한 마디씩 한다 해도 짐작하는 것은 두 마음에 달려 있노라(萬人各一語斟酌在兩心)”라고 개작한 「사룡」의 근원이 되었던 전승민요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사설시조에서 짐작할 수 있다.
“개야미 불개야미 ᄌᆞᆫ등 부러진 불개야미 압발에 疔腫 나고 뒷발에 죵귀 난 불개야미/廣陵 ○재 너머 드러 가람의 허리를 ᄀᆞ르 무러 추혀들고 北海를 건너닷 말이 이셔이다/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ᄒᆞ여도 님이 짐쟉ᄒᆞ쇼셔.”
이로써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의 전승민요가 고려 후기에 한시 형태의 궁중속악으로, 그리고 조선시대에 사설시조로 장르가 전환되어 수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