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cycle)

목차
관련 정보
서울 아시안게임 사이클벨로드롬 경기장
서울 아시안게임 사이클벨로드롬 경기장
체육
개념
경기용 자전거를 사용하여 속도를 겨루는 기록경기.
목차
정의
경기용 자전거를 사용하여 속도를 겨루는 기록경기.
내용

아마추어와 프로경기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 경기만 행해지고 있다. 사이클경기는 벨로드롬(velodrome)이라 불리는 경기장경기와 도로경기가 있다.

벨로드롬은 사이클경기의 전용경기장으로서, 트랙을 비탈지게 하여 직선 부분은 7°∼ 15°, 코너 부분은 45°로 되어 있다.

트랙은 마룻바닥·시멘트·아스팔트제 등이 있으나, 세계기록의 대부분은 노면 저항이 적은 마룻바닥에서 수립되고 있다. 경기종목과 기법은 수십 가지로 다양하게 많으나, 그 중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속도경기: 일제히 출발하여 정해진 거리를 도는 경주. 1,000m·2,000m·5,000m·1만m 등의 각 주파거리를 주파시간으로 따지는 것이다.

② 스크래치경기: 천천히 달리거나 정지하거나 관계없이 돌다가 최후 200m의 결승점 통과시간을 재는 경기이다. 대체로 1,000m를 2∼5명의 선수가 경기를 하게 된다.

③ 탠덤 스크래치(tandem scratch): 2인승 경기로 같은 자전거에 2명이 짝을 이루므로, 체격·성격·각력(脚力) 등이 비슷해야 한다. 올림픽경기종목이었으나 중도에 폐지되었다.

④ 타임 레이스: 일정한 시간(1시간 또는 30분)에 얼마나 많은 거리를 주파하느냐를 보는 경기. 시간이 되면 신호를 해서 주파거리에 의한 승패를 가리는 것인데, 한 명이 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함께 할 수도 있다.

⑤ 단체추발경기: 1팀이 3명 또는 4명으로 구성되어 상대팀을 앞지르는 경기. 결승선에 세번째의 주자가 골인했을 때 또는 세번째의 주자가 상대방 세번째의 주자를 추발했을 때 승부가 결정난다.

⑥ 포인트 레이스: 득점경주로서, 1만m·2만m·4만m 등이 있다. 매 랩마다 발착선 통과순위로 3점·2점·1점을 주어 합계점수로써 순위를 결정한다. 이 밖에도 개인도로경기·개인추발경기 등이 있다. 올림픽종목은 1,000m독주·시간경주·스크래치 레이스·4,000m단체추발경주·200㎞도로경주 등의 5종목이 있다.

자전거를 사용한 최초의 경기는 1868년 파리의 교외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영국인 무어(Moore,J.)가 우승하였다. 이 때의 자전거 타이어는 에어식이 아니고 통고무로 된 것이었다.

1869년에는 파리에 자전거클럽이 결성되어 커브 부분을 경사지게 한 자전거 전용경기장이 마련되었으며, 1893년 시카고에서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의 경기종목은 여러 명이 동시에 출발하는 속도경주였다.

1895년에 프로경기가 생겨나, 같은 해의 제3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합동경기가 실시되었다.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대회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회 때는 개인도로경주만 실시하다가 2회 때부터 트랙종목이 함께 실시되었다.

1900년에는 유럽 7개국과 미국이 참여하여 사이클리스트연합(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UCI)을 창설, 매년 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통할해오다가 1965년 국제아마추어사이클연맹(FIAC)과 국제프로사이클연맹(FICP)으로 분리되었는데, 각각 본부를 이탈리아와 벨기에에 두고 있다.

한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제1회부터 정식으로 채택되었으며, 1962년 창설된 아시아아마추어사이클연맹에서도 2년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6년 고희성에 의해서이며, 최초의 자전거경기대회는 1906년 4월에 당시 육군참위인 권원식(權元植)과 일본인 요시카와(吉川) 두 사람이 훈련원에서 경기한 것이다.

당시에는 자전거를 자행거[自行車]라 불렀다. 1907년 6월 경성에 있는 한일자전거상회의 주최로, 1909년 4월 조선일보사 주최로 각각 자전거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자전거는 일부 부유층 및 특수층에서만 사용한 것이므로 경기도 친목경기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본격적인 경기는 1913년 4월 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공동주최하여 인천(12일)·용산(13일)·평양(27일) 등지에서 실시된 전조선자전거경기대회로, 자전거가 많이 보급된 일본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자연 한일 대항 경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엄복동(嚴福童)이 우승하여 전 국민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으며, 용산대회에서는 10만 이상의 관람객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다. 이 대회를 계기로 자전거경기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22년 5월에는 평양윤업회(平壤輪業會) 주최로 평양에 있는 광성고등보통학교에서 전조선자전거경기대회가 개최되어 엄복동이 일본인들을 물리치고 다시 우승하여 그 이름을 떨쳤다.

그 뒤 1939년 5월에 경성운동장에서 조선자전거경기연맹 주최 제1회 조선자전거경기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여자선수의 참가로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11월에 조선자전거경기연맹이 재조직되었으며, 이듬해 3월 대한자전거연맹으로 변경되어 제1회 남녀자전거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48년에 대한체육회와 국제아마추어사이클연맹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런던에서 개최된 제14회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제15회 올림픽 등 각종 국제경기에 참가하였다.

이와 같은 활약으로 1962년 아시아자전거경기연맹 창설에는 한국이 설립위원국이 되고 창설 후에는 상임이사국이 되었으며,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도로경기 1·2·3위를 차지하여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1982년 10월에 개최된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100㎞도로단체와 185㎞도로개인에서 박세룡(朴世龍)이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86년 10월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자개인도로경기(179.2㎞)에서 신대철(申大徹)과 여자개인도로경기(64㎞)에서 김경숙(金京淑)이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 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세계강호들과 겨루어 중위권에 올랐고,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하였으며, 19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였다.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의 큰 수확을 올렸다.

참고문헌

『대한체육회70년사』(대한체육회, 1990)
『한국운동경기사』(나현성, 보문사, 1958)
집필자
정찬모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