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으로부터 삼천포 방면으로 10㎞ 정도 떨어진 용현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5㎞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은 간척사업으로 해변을 메우기 위한 흙을 채취하던 중 일부 석조유구(石造遺構)가 노출되어 발견되었고, 1986년 7월단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 경작지 사정에 의해 198평만을 조사해 총 13기의 유구를 발견하였다.
대개 현지표 30∼40m 정도의 지하에서 발견된 이 유구들은 개석(蓋石)은 거의 파실되고 그 조각만 몇 기의 유구 내에서 발견되었다.
유구의 특징은 제1호분에서 제12호분까지는 동일하게 여러 매의 점판암의 판석을 세워서 네 벽을 우선 조립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으로 할석(割石) 또는 판석을 눕혀 주위를 쌓은 상형석관묘(箱形石棺墓)형태이다. 그런데 제13호분만은 냇돌로 네 벽을 쌓아올려 만든 석곽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파괴되어 개별적인 규모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비교적 대형분(大形墳)에 속하는 제1호분의 경우는 길이 3.5m, 너비 0.7m의 세장(細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장축(長軸)은 동서 또는 남북방향이며 바닥에는 점토를 깔았다.
유물은 제1·2·3·4·6·7·13호에서 주로 출토되었는데, 토기·철기·장신구 등이다. 그 중 토기는 쇠뿔모양잡이〔牛角形把手〕가 달린 적갈색 유개소옹(有蓋小甕)과 회청색의 광구원저장경호(廣口圓低長頸壺)·유대호(有臺壺) 등이며, 철기는 장도(長刀)·소도자(小刀子)·등자(鐙子)·촉(鏃) 등이 있었고, 장신구로는 관옥(管玉)과 금동제세환이식(金銅製細環耳飾)이 출토되었다.
이들 부장품의 위치로 보아 장축을 동서향으로 하는 유구는 두향(頭向)이 동쪽이며, 남북향인 경우는 남쪽이 두향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고분군은 인접한 사천 예수리고분과 같이 유물의 특징면에 있어서는 가야시대의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수혈식고분(竪穴式古墳)이나 구조면에 있어서는 상형석관묘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축조시기는 3,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