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 기슭에 있으며, 1977년 전지개간을 하다가 발견되어, 그 해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이 때 수혈식고분 6기와 파괴된 옹관묘 1기가 조사되었다.
수혈식고분은 모두 네 벽을 여러 장의 판석으로 세운 다음 그 위에 판석을 1매씩 얹어서 구축한 석곽분으로 뚜껑은 덮이지 않았고 바닥에는 점토를 깔았다. 석곽의 장축은 동서방향에 가까운 것과 남북방향에 가까운 것으로 나뉘어 있었다.
비교적 잘 남아 있었던 제2호분은 길이 3m, 너비 0.8m, 벽 높이 0.65m이었고, 제3호분은 길이 1.45m, 너비 0.55m, 벽높이 0.43m이었다.
유물은 동서 장축의 석곽분에서는 서쪽 단벽쪽에, 남북 장축의 석곽분에서는 남쪽 단벽쪽에 부장되어 있었다. 몇몇 장신구의 출토상태로 보아 유물이 부장되어 있는 서쪽이나 남쪽이 피장자의 머리방향이었다.
이 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토기로서 광구원저장경호(廣口圓底長頸壺)ㆍ파배(把杯)ㆍ고배(高杯) 등이 있다. 1호분에서는 토제방추차(土製紡錘車) 1점, 금동세환이식(金銅細環耳飾) 1쌍, 관옥(管玉) 3점, 유리구슬 21점이 출토되었고, 제2호분에서는 금동이식 1점이 나왔다. 제3호분에서는 금제세환이식 1점, 금동이식 1점, 유리구슬 25점, 관옥 4점 및 곡옥(曲玉) 1점이 출토되었다.
옹관은 제5호 석곽의 아래에서 파괴된 채 발견되었는데, 적갈색 옹형토기 2개의 구연부(口緣部)를 서로 맞대어 조립한 합구식이었다.
이 고분군의 수혈식석곽분은 선사시대 석관묘의 전통을 남기고 있고, 출토유물 중 토기는 소성도도 낮고 고식이어서 연대는 가야시대의 비교적 이른 시기인 3,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