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반하국(散半下國)’이라고도 한다. 『일본서기』긴메이(欽明) 2년기와 23년기에 보인다. 2년기(541)의 기사는 가야제국이 백제와 일본의 힘을 빌려 신라의 서진세력(西進勢力)을 막기 위하여 백제성왕의 주제로 임나부흥회의를 열었는데, 산반해국에서는 한기(旱岐)의 아들, 즉 왕자를 보내고 있다.
23년기 기사는 신라가 562년(진흥왕 23) 대가야(고령)를 멸하고 가야지역 전역을 통합하는 일을 1월에 종합하여 서술한 것이다. 그 분주(分註)에 가야지방의 10국 이름을 들고 있는데 그 중 산반해(하)국명도 보이고 있다.
『일본서기』의 이 산반해국은 또한 『삼국사기』지리지 강양군(江陽郡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조에 “강양군의 영현(領縣)의 하나로 삼기현(三岐縣)이 있는데, 이 현은 본래 삼지현(三支縣) 또는 마장현(麻杖縣)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고려 때까지 강양군으로 부르고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삼기현은 지금의 대병면(大幷面)인데, 조선 태종 때에 지금의 삼가면(三嘉面)인 가수현(嘉樹縣)과 합하여 삼가현으로 된 이름이다. 마장(麻杖)의 마(麻)는 역시 우리말로 삼이 된다.
그리하여 산반해 또는 산반하가 삼기 또는 삼지로 된 것은 '산'이 '삼'으로 와음(訛音)되었으며, 반이 기지가 됨은 이곳이 진주·합천·의령 등으로 가는 분기점이 되는 곳이라 그렇게 불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해는 그 사람 저 사람을 그 해, 저 해하는 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