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사내 거지가 윗마을에 살고, 그 아랫마을에는 여자 거지가 살았다. 두 거지는 얻어먹으러 가다가 길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다. 거지 부부는 얼마 있다가 딸을 낳았다. 딸의 이름을 은장아기라 지었다. 거지 부부의 살림은 조금 나아지고, 다시 딸을 낳았다. 둘째 딸의 이름을 놋장아기라 지었다. 다시 막내딸을 낳고 가믄장아기라 이름을 지었다.
그 후 하는 일마다 운이 트여 거지 부부는 큰 부자가 되었다. 태평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거지 부부는 누구 덕에 잘 사는지 딸들에게 물었다. 큰딸과 둘째 딸은 부모님 덕에 잘산다고 했지만, 막내딸 가믄장아기는 “부모님 덕도 있지만, 내 배꼽 밑의 선그뭇 덕에 잘산다.”라고 대답하였다.
부부는 가믄장아기를 집에서 내쫓았다. 부모의 말에 따라 가믄장아기가 집에서 떠나자, 부부는 큰딸에게 나가 보라 하였다. 가믄장아기를 쫓아간 큰딸은 동생을 만나서는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가믄장아기는 큰딸이 지네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과연 큰딸은 지네로 변하고 말았다. 부부는 둘째 딸에게도 나가 보라 하였다. 둘째 딸도 가믄장아기를 쫓아가 어서 가라고 재촉했는데, 가믄장아기의 말대로 말똥버섯이 되고 말았다. 가믄장아기를 내쫓은 부부 역시 눈이 멀더니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거지가 되었다.
한편 집에서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들판을 가다가 마를 파는 마퉁이 삼 형제를 만나 그들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마퉁이 삼 형제의 행실을 보니, 큰마퉁이와 둘째 마퉁이는 사납고 막내 마퉁이는 착했다. 가믄장아기는 막내 마퉁이와 부부가 되어 마를 파 먹고 사는데, 마를 파던 구덩이에서 금덩이와 은덩이가 쏟아져 나와 단번에 큰 부자가 되었다.
가믄장아기는 부모를 찾으려고 거지들을 위한 잔치를 연다. 맨 마지막 날에 눈이 먼 거지 부부가 찾아 들어왔다. 그 거지 부부가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안 가믄장아기는 장님 거지 부부를 안방으로 모셔 앉히고 술을 권하며 자기가 가믄장아기임을 알렸다. 부부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받아 든 술잔을 덜렁 떨어뜨렸고 그 순간 눈이 밝아졌다.
고귀한 여인이 집에서 쫓겨나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는데, 그 남자가 살던 곳이나 일하던 곳에서 금덩이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는 삽화는 「서동설화(薯童說話)」의 선화공주와 서동 이야기와 유사하며, 또 자신의 운복 때문에 잘 산다는 내용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 내 복에 산다는 딸」 유형의 민담과 흡사하다. 또, 거지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 부모와 상봉하고 부모가 눈을 뜬다는 삽화는 「 심청전」의 결말과 겹친다. 다른 갈래의 서사 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주목되고 있다.
본풀이에서 그 근원이 풀이되고 있는 '전상'은 ‘전생 인연’의 준말로 ‘전생(前生)’의 음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추정도 있으나, 그 어원과 의미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일상 용어로는 평상시와 달리 술을 마구 먹거나, 해괴한 짓을 하여 일을 망치거나 가산을 탕진할 때 그 행위를 ‘전상’이라 한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여 몇 번이고 감옥에 출입해도 도둑질할 마음이 일어나고, 노름을 시작하면 가산이 탕진되어도 그만둘 수 없는 것과 같은 것 모두 ‘전상’ 때문이며, 농업 · 공업 · 상업 등 어떤 직업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까지도 ‘전상’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의 전상도 있는데, 뜻하지 않게 얻은 재물이나 행운도 전상이라고 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타고난 화복이나 운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삼공본풀이」를 구연하는 목적은 나쁜 전상을 제거하고 좋은 전상이 오도록 기원하는 데 있다.
부녀 관계의 전범이나 여성의 주체성 등을 엿볼 수 있는 신화로 그 의미가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