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의 저자는 상월 새봉(霜月璽篈, 1687~1767)이다. 새봉의 속성(俗姓)은 손(孫) 씨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출신이다.
상월 새봉은 15세에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의 극준(極峻)에게 출가하였으며, 이듬해 세진 문신(洗塵文信)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18세에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의 아래에서 공부하여 그의 법을 이어 받았다. 1748년(영조 24) 새봉은 선교도총섭규정팔로치류사(禪敎都摠攝糾正八路緇流事), 2년 후에는 주표충원장겸국일도대선사(主表忠院長兼國一都大禪師)로 임명되었다. 1754년(영조 30) 봄에 새봉이 순천 선암사에서 화엄대법회를 주관할 때 1,2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들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새봉은 1767년(영조 43) 순천 선암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문도(門徒)들이 순천 선암사, 해남 대둔사, 영변 보현사와 오도산에 그의 승탑(僧塔)을 세웠다.
상월 새봉의 문하인 징오(燈窹), 해월(海月) 등이 그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상월대사시집』은 1권 1책의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雙邊)에 반곽(半郭)은 17×14.9cm이며, 10행 16자로 이루어져 있다. 2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를 사용하였다.
『상월대사시집』은 1780년(정조 4)에 상월 새봉의 제자인 징오(燈窹), 해월(海月) 등이 1권으로 간행하였다. 발문(跋文)에 따르면 이 책은 원래 2권으로 계획하였으나 원고를 분실하여 시집 1권으로 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이 시집이 수록되어 있다.
권두(卷頭)에는 신경준(申景濬, 17121781)과 원중거(元重擧, 17191790)가 쓴 서문이 실려 있고, 권말(卷末)에는 새봉의 제자 징오(燈窹)가 찬술(撰述)한 「상월선사행적」과 발문이 실려 있다.
본문에는 오언 절구(五言絕句) 9수, 육언 절구 1수, 칠언 절구(七言絕句) 13수, 오언 율시(五言律詩) 6수, 칠언 율시(七言律詩) 55수 등 총 8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크게 불교의 내적 감흥을 읊은 것과 새봉이 유학자와 교류하면서 읊은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불교의 내적 감흥을 읊은 시는 다시 불교 내면의 세계와 승려 간의 교류를 읊은 시로 나눌 수 있다. 불교 내면의 세계를 읊은 시로는 「회포를 풀어 읊다[述懷]」, 「벽송암을 제목으로 짓다[題碧松庵]」 등이 있다. 새봉은 이러한 시에서 “참선은 남악의 달이요 교설은 설암의 가풍이다”라고 하여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읊었다. 또한 “어찌 일세 호걸의 큰 공명을 부러워하랴”라며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와 청빈(淸貧)한 삶에서 자족자락하는 해탈(解脫)의 흥취를 읊었다. 승려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시로는 「용담과 이별하며 지어주다[贈別龍潭]」, 「삼가 무용 대화상을 애도하다[謹挽無用大和尙]」 등이 있다. 이러한 시에서는 “마음은 천 강에 나타난 보름달이요, 자취는 만 리를 달리는 천리마 같다”라고 하여 운수납자 수행자의 삶을 읊고, “나고 죽음이 뜬 구름임을 알고 있다만 바람 맞으며 슬픈 눈물만 빈 뜰에 뿌리네”라고 읊고 있다.
새봉의 불교 외적인 교류를 읊은 시로는 「승평 부사께 드리다[呈昇平衙門]」, 「회포를 펴서 생질 김세귀에게 보이다[述懷示甥姪金世龜]」, 「복천사 유산객의 시운을 따라 짓다[次福泉遊山客韻]」 등이 있다. 이러한 시에서는 “고요한 숲 아래 이 절에서 참마음을 이야기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라고 읊어 지방 관리와의 문학적 교류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녹야원과 니구산의 길은 다르지만 천연(天然)의 대도(大道)는 문과 뜰을 함께 하네”라고 하여 석가모니가 태어난 녹야원과 공자가 태어난 니구산은 다르지만 그 가르침은 같다고 하였다. 때로는 산에 유람을 온 유학자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대개 유교에서는 선가를 폄하하더니 … 문득 시인을 만나 마음이 즐겁네”라고 하며 유학자들에게 은근히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상월 새봉의 시에는 승려의 삶과 유학자의 불교 인식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록된 시의 형식은 율시가 다수를 이루는데 이는 당시 승려들의 문학적 기량을 보여준다. 『상월대사시집』을 통해 18세기 수행자이자 지식인 상월 새봉이 가졌던 시대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