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장령, 현감, 종부시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운해훈민정음』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43세 되던 1754년(영조 30) 비로소 향시에 합격했는데 당시의 시험관은 홍양호(洪良浩)였다. 그 해 여름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상경 후 홍양호와의 교분이 두터웠다. 과거합격 후 정언 · 장령 · 현감 등을 역임한 다음 1769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한 뒤 일단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나 곧 영조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감수하고, 1770년에는 문학지사(文學之士) 8인과 함께 『문헌비고』를 편찬할 때 <여지고 輿地考>를 담당하였으며, 이어서 그 해 6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의 감수를 맡았다.
이후 승지 · 북청부사 · 순천부사 ·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낸 다음 1781년(정조 5) 70세로 일생을 마쳤다. 업적은 여러 문헌에 다음과 같은 논제(論題)나 책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운해훈민정음』(행장에는 五聲韻解) · 『일본증운(日本證韻)』 · 『언서음해(諺書音解)』(유고목록과 서에는 東音解) · 『평측운호거(平仄韻互擧)』 · 『거제책(車制策)』 · 『병선책(兵船策)』 · 『수차도설(水車圖說)』 · 『논선거비어(論船車備禦)』 · 『의표도(儀表圖)』 · 『부앙도(頫仰圖)』 · 『소사문답(素沙問答)』 · 『직서(稷書)』 · 『장자변해(莊子辨解)』 · 『강계지(疆界志)』(또는 疆界考) · 『산수경(山水經)』 · 『도로고(道路考)』 · 『산수위(山水緯)』(旅菴全書에는 山水考로 통합되어 있음.) · 『사연고(四沿考)』 · 『가람고 伽藍考』 · 『군현지제(郡縣之制)』 등이다.
이상에서 그가 문자학(文字學) · 성운학(聲韻學) · 지리학(地理學) 등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운해훈민정음』은 송학(宋學)의 시조의 한 사람이라는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성음도(皇極經世聲音圖)』(正聲正音圖라고도 함.)를 본보기로 하여 일종의 운도(韻圖)를 만들려고 전개한 이론인데,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문자론(文字論)을 전개한 학술적인 업적이었다.
참고문헌
- 「이조중기국어학사시론」(강신항, 『국어연구』, 국어연구회, 1958)
- 『운해훈민정음연구』(강신항, 한국연구원, 196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