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씩, 가을(대략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에 열린다. 1977년도에 ‘대한민국연극제’란 명칭으로 문예진흥원의 주최 행사로 출범했으며 새로 쓰여진 창작극을 출품한 극단을 선정하여 경연케 하는 방식을 취했다.
즉, 희곡심사를 거쳐 선정된 창작극 10∼12편을 공연하는데, 작가에겐 작품료를, 공연하는 극단에는 지원금을 주어 경연하게 하였다. 제3회 연극제까지는 대통령상 및 문공부장관상, 희곡상을 수여했고, 제4회부터는 분야별 수상으로 바뀌었다.
이 연극제는 시행하는 동안 계속 연극제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개선 방안이 논의되어 그 명칭과 운영 주최 및 운영방식에 있어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어 왔다.
제6회 연극제(1982) 때부터 문예진흥원이 주최하는 관주도에서 벗어나 한국연극협회와의 공동 주최로 바뀌었고, 제10회 연극제(1986)는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으로, 한국연극협회의 주관 아래 외국단체의 초청공연 및 지금까지 공연된 창작극 중 우수작을 초청하여 경연이 아닌 축제 형식으로 시행하였다.
제11회 연극제(1987) 때부터는 ‘서울연극제’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 제13회 연극제(1988) 때부터는 한국연극협회 단독 개최로 바뀜으로써 민간 주도로 탈바꿈했으며, 올림픽 게임을 계기로 외국극단의 초청공연을 갖는 등 국제연극제의 성격을 가미했다.
제14회 연극제(1989)는 창작 초연 희곡만 심사를 거쳐 연극제에 참가할 수 있게 하던 이전의 희곡 심사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그 해의 공연작 중 공연심사를 통과한 연극도 연극제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공연심사 병행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는 그 동안 연극제 출범 이후 우수한 창작극의 발굴이란 목표를 표방해 왔으나 실제로는 연극제의 공연작들이 그 수준이나 완성도가 낮아 관객들의 호응을 별로 얻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제15회 연극제(1991)는 ‘연극의 해’를 맞아 사상 최대 규모로 기획되었으며, 운영방식도 세 가지로 다원화되었다. 축제형식으로 치뤄졌으며, 특히 관객지원제도인 ‘서울티켓’을 마련하여 관객의 저변 확대를 이루었다.
이 때를 계기로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서울연극제의 운영방식 세 가지는, 첫째 희곡이나 실연심사를 거쳐 선정된 창작극 8편 내외로 이루어진 ‘공식참가공연’, 둘째 창작극과 번역극에 상관없이 참가를 희망하는 극단들의 공연인 ‘자유참가공연’, 셋째 공식초청공연과 외국참가공연으로 이루어진 축제 형식이다.
제19회 연극제(1995)부터는 현대자동차의 협찬을 받아 새롭게 현대연극상이 신설되어 자유참가공연작 부문에서 시상하였다.
제20회 연극제(1996)는 축제 성격을 더욱 공고히 하였는데, 실연심사 위주로 전환함으로써 연중 최고의 공연을 집중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로 성격을 바꾸었다. 또 종전에 문예회관으로 한정되었던 공연장을 서울 시내 7개 극장으로 확대시켰으며 대략 8편 내외였던 공식참가작을 12편으로 늘려 풍성함을 더했다.
또한 협찬사인 현대자동차 측이 ‘현대쏘나타상’을 신설하여 관객을 위한 경품 추첨을 통해 자동차를 1등 경품으로 제공하기도 하는 등 기업과 관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수상 부문도 대상, 현대쏘나타상, 창작희곡상, 극본상, 연출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무대예술상, 특별상, 인기상 등으로 대폭 늘어났다.
제21회 연극제(1997)는 국제극예술협회(ITI)의 제27차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국내외 120여 개의 공연단체가 참여한 한국연극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연극제를 병행했다.
제22회 연극제(1998) 역시 ‘서울국제연극제’ 형식으로 개최되어 공식공연에 외국초청공연이 3편, 한국작품이 8편, 그리고 특별공연으로 외국작품이 3편, 특별무료공연으로 대학로명물전 · 굿판 · 여성국극 · 마임 · 봉산탈춤 · 갈라쇼 · 한국춤 · 락 콘서트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펼쳐졌다. 그 외에 자유참가공연이 행해졌다.
이처럼 처음엔 관 주도의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범하여, 민간 주도의 ‘서울연극제’ 혹은 ‘서울국제연극제’ 등의 명칭으로, 또 처음엔 경연형식으로 출발하여 점차 축제형식으로 그 성격을 바꾸어 간 이 연극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는 국제적 성격을 가미한 연극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창작극 진흥이란 목표에 따른 작가 지원제도로 수많은 창작극들이 연극제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다양한 소재와 주제 및 새로운 형식 기법이 선보였다.
작가별로 보면 차범석 · 이근삼 · 노경식 · 윤조병 · 오태석 · 윤대성 · 이강백 · 이재현 · 김상열 · 이윤택 · 최인석 · 김광림 · 김영무 · 조원석 · 정복근 등 중견작가, 그리고 박평목 · 오은희 · 장진 · 조광화 · 최현묵 등 신인작가들이 연극제의 희곡심사나 실연심사에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다.
연출가로는 강유정 · 오태석 · 정진수 · 윤호진 · 김상열 · 김도훈 · 채윤일 · 손진책 · 강영걸 · 심재찬 · 김완수 · 김아라 · 이윤택 · 박계배 · 최용훈 · 김민기 · 조광화 등이 주로 참가했다.
이 연극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농토」(제 5회, 극단 에저또, 윤조병 작, 방태수 연출), 「신화 1900」(제6회, 극단 실험, 윤대성 작, 김동훈 연출), 「봄날」(제8회, 극단 성좌, 이강백 작, 권오일 연출), 「어느 족보가 그 빛을 더하랴」(제11회, 제작극회, 조원석 작, 이완호 연출),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제14회, 극단 민예,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 「막차 탄 동기동창」(제15회, 극단 춘추, 이근삼 작, 문고헌 연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제15회, 극단 목화, 오태석 작 · 연출), 「누군들 광대가 아니랴」(제16회, 극단 뿌리, 박평목 작, 김도훈 연출), 「이디푸스와의 여행」(제18회, 극단 무천, 장정일 · 김아라 작 · 연출), 「서툰 사람들」(제19회, 극단 로얄 씨어터, 장진 작, 박원경 연출), 「영월행 일기」(제19회, 극단 쎄실, 이강백 작, 채윤일 연출), 「날 보러 와요」(제20회, 연우무대, 김광림 작 · 연출) 등이 있다.
초기엔 무거운 사회비판의 리얼리즘극과 역사극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점차 서양의 신화나 우리의 설화를 다룬 작품들, 여성주의 연극, 그리고 기존 작품의 패러디나 상황희극에 이르기까지 소재의 폭이 매우 확대되었다.
또 개방적인 무대, 서사극, 극중극을 활용한 메타연극, 실험극, 해체연극, 뮤지컬 형식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방법이나 무대개념도 퍽 다양해졌다.
또 연극제 후반으로 갈수록 젊은 신인작가와 젊은 연출가들의 참가로 신선한 감각과 무대기법이 가미된 것도 신세대관객을 끌어들이는 유인 요건이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주최측인 한국연극협회의 안일한 연극제 운영방식과 홍보부족으로 인해 진정한 연극축제로서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점은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연극제가 지향하는 뚜렷한 방향성의 부재 및 공식참가공연과 공식초청공연의 변별성 문제와 그 선정기준의 문제, 또 10개 내외의 유력한 극단과 5, 6명의 저명한 작가나 연출가들이 단골로 참가함으로써 연극제의 매너리즘을 만들어낸 점, 심사과정의 투명성 문제, 연극제 참가로 제작비 지원을 받는 극단의 관객동원 노력부족 등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