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에 있었던 조선 전기의 종.
개설
지금의 보신각종은 돈의문(敦義門: 西大門) 안에 있는 신덕왕후(神德王后) 정릉(貞陵)의 능사(陵寺)에 있었던 것이다. 이 종은 정릉사(貞陵寺)가 폐사되면서 원각사(圓閣寺)로 옮겨졌다.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가 이 종을 숭례문(崇禮門)으로 다시 옮기려던 것을 임진왜란 후인 1594년(선조 27)에 종루(鐘樓)에 걸어두었다. 그 뒤 이 종루가 1869년(고종 6)에 불타고, 1895년(고종 32)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됨에 따라 이때부터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내용
종신에는 종복 중앙에 굵은 선과 위아래 가는 선의 띠장식대[太彫線帶]가 둘러져 있고 윗부분에는 상대(上帶) 대신 1줄의 띠장식이 있다. 그 아래 유곽(乳廓)이 없이 1구(軀)의 보살상이 남아 있다. 아랫부분에는 구연부(口緣部)에서 위쪽으로 하대(下帶) 대신 2줄의 띠장식과 명문(銘文)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종뉴는 쌍룡이 함께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있는 형태인데, 역동적인 몸체, 용맹스러운 얼굴 등에서 사실성(寫實性)과 조각성(彫刻性)이 농후한 편이다. 종신은 전체적으로 볼륨감과 팽창감이 감도는 편이고, 아마도 주조 당시는 네 구의 보살(菩薩)이 교대로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및 의의
또한 이 종은 흥천사명 동종, 낙산사 동종(洛山寺 銅鍾, 1469), 봉선사 동종(奉先寺 銅鍾, 1469)과 더불어 왕실에서 주성한 종이어서 주조 관계 인물이 거의 같은데, 감역(監役) 김덕생(金德生) 아래 주성장(鑄成匠) 정길산(鄭吉山), 김몽총(金蒙寵) 등 직분이 세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륨감 있는 대표적인 조선 초기의 종으로, 오랫동안 조석을 알리고 또 제야의 종으로 사용되었으므로 한국 범종사상 의의가 매우 깊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
- 『서울의 문화재』(서울특별시, 1987)
- 「조선전기 범종고」(정영호, 『동양학』1,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97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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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큰 종을 매다는 고리. 주로 용이 조각되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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