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순조 33) 작.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165㎝, 가로 119㎝. 화엄신중도량(華嚴神衆道場)과 천룡은 이미 고려시대에 설치한 적이 있으며, 특히 조선 후기에는 많은 수의 신중탱화(神衆幀畫)가 조성되었는데, 그 유형은 제석탱화·제석금강탱화 등이 있다.
화기(畫記)에 의하면, 이 그림은 1833년 5월에 칠불사(七佛寺)에서 편수(片手)·천여(天如)·정상(定相)·우찬(禹贊)·익찬(益贊) 등이 그려서 천은사 대법당(大法堂)에 봉안하였음이 명기되어 있다.
구도는 화폭을 조금 위쪽에서 2분하여 그 위쪽에는 화엄신중을 비롯한 천녀상(天女像)을 배치하고, 아래쪽의 천룡그림은 무장한 채 합장한 위태천(韋汰天)을 팔부신장(八部神將)이 호위하고 있는 2단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은 둔탁하게 도식화된 선으로 묘사되어 다소 경직된 모습이고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도 도안화되어서 장식적인 편이다.
색감은 녹색계통을 주로 쓰고, 검붉은 색과 검은색·황색을 배합하였는데, 각 인물들의 자세가 뚜렷하게 구별이 되지 않는 데 비하여 얼굴은 하얗게 처리해서 화면 전체에 격조 높은 색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시각적으로 산만한 색감이나 둔탁한 묘선(描線)은 19세기 불화의 양식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화엄신중과 천룡을 함께 도설한 예는 비교적 드문 편에 속한다.